(시편 135 1-21,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어제 본문으로 끝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아직 여운을 남겨 하나 더 그 노래를 부르는 듯하다.
이 시에서 지금 “여호와의 종들”이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 있다.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어제 말씀의 연속이다.
실제로 오늘 시의 끝부분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를 네 번이나 거듭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어제의 시는 너무 짧았다.
단 세 절뿐이었다.
오늘은 일곱 배나 던 긴 구절이니 충분한 설명이 그 안에 있다.
“여호와의 종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신 자들이다.
누가 누구를 위한다 할 때
위하는 것은 목적(지향점)을 의미하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을 주관하시며,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악인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당신을 위하여서다.

그런데 누구를 더 위하실 필요가 없는,
누구를 목적으로 삼으실 일이 결코 없으신,
유일하신 지존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하셨”다.
무엇으로 택하셨냐면,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로서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으니
사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다.
그러면 “특별한”이란 왜 붙는가?
그것은 최초 인간의 범죄로 인한 창조질서의 왜곡과 변질 때문에
모든 것이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죄의 속성에 오염된 만물,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나타나기에는
너무 더러운 곳으로 변질되었다.
하나님의 소유였던 것이 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서 깨뜨려버리시는 천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는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다.
그들에게 특별한 자격과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위할만한 ―위하기에 합당한― 대상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그들을 택하셨다.

“자기를 위하여”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의 기쁨을 위하여서라는 뜻이다.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그를 위해서’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높으신 분이 없다.
하나님이 누군가를 위할 더 높은 존재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기쁘게 해드릴 하나님보다 더 높은 지존자가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하인으로서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위하여”,
즉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요
만물이 지향하는 목표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이 말씀에서 바로 연상되는 아주 유명한 말씀,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베드로전서 2:9)은
우리를 높이기 위한 말씀이 아니다.
우리 자신은 높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구절은 이렇게 된 목적도 같이 밝힌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소유”로 택함을 받았다.
이 말씀은 나에 대한 어떠한 우쭐함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
내가 세상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나의 우월함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하는 존재로 택함을 받은 사실이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위하지도 않는 것,
이것이 현재 세상의 본질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을 위하는 자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특권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