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18-29,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시는)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서 주님은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사실은 모든 교회, 모든 성도,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하시다.

두아디라 교회는 칭찬할 것이 많다.
그들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주께서 인정하셨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는 말씀이다.
에베소 교회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받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권고를 들은 것에 비하면
두아디라 교회는 참으로 복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책망할 것이 있다.
거짓 선지자를 용납하여 “행음”과 “우상”의 예전에 참여한 것이다.
특히 “행음”에 대하여는 “음행”, “간음”으로 더 자세히 설명된다.
아,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행음”과 “음행”과 “간음”과 병행했다!
이것이 가능한가?
나는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한 번의 실수든 탐욕에 깊이 빠지는 것이든
처음보다 나아지는 믿음의 진보와 함께 이러한 일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나)의 믿음은 온전하지 않고 부분적이기가 매우 쉽다.
어느 부분은 잘 하고 어느 부분은 문제가 있다(많다).

두아디라 교회에 대해 주께서 왜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분이심을 강조하셨을까?
그것은 바로 주님이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즉 이 교회는 ―아니, 나는― 내가 잘 하고 있는 부분은 나타나고
문제가 있는 부분은 감추어진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눈에는 그러할 것이다.
“행음”과 “음행”과 “간음”,
이것은 당사자들만 아는 일이다.
이에 반해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일어나고 있다.

시편 139편에 이미 이와 똑같은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그리고 그 다음 구절에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이것은 다윗의 시요 간구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줄을
처절하게 경험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이로써 그는 주님이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이신 것을
너무도 확실하게 알게 되지 않았는가.
그 일도 바로 “행음”과 “음행”과 “간음”과 관련하여서였다.
아, 이 부분은 참으로 은밀한, 감추어진,
겉으로는 여전히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의 진보를 드러내면서
병행할 수 있는 비밀의 영역이다.
주님은 그것도 보신다.
다 아신다.

그런데 참으로 감사한 것은
주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다윗이 회개했고, 나도 회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또한 참으로 두려운 것은
주님이 그 “기회를 주었”다(과거)는 사실이다.
이 기회는 시도 때도 없이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얼마큼의 기회가 주어지는지는 모른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이미 수많은 기회를 주셨는데도 그것을 모른 채, 거부한 채
그 기회를 무산시킨 채,
그 뒤에야 살 길을 찾으려 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수 있다.

한 번 회개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니다.
다시는 반복하여 죄를 짓지 않아야 할 것이고,
그럼에도 죄를 지을 때마가 회개해야 한다.
주께서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가 될 것을 강권하신다.
“끝까지” 지켜야 할 주님의 “일”에는
당연히 회개도 포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