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3-134편, 형제가 연합하여 여호와를 송축함)

이 짧은 두 시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마무리되었다.
마지막에 부르는 노래는 “형제”의 “연합”이요,
“모든 종들”의 “여호와 송축”이다.
성전에 올라가는 길은 공동체의 행보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걸어간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에서처럼 “우리 아버지”시다.
하나님은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주시고 나와 은밀하게 교제해주시지만,
또한 가족 모두가 하나님을 뵙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선하신 아버지시므로
모든 자녀들이 화목하게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이미 이 “연합”의 모본을 보여주셨다.
형제들의 연합은 거룩하신 삼위 하나님의 연합을 따라 하는 것이다.

연합은 어떤 사역, 행사, 사업과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이고 원초적이다.
함께 있는 것이 연합이다.
본문에 “연합”과 함께 따라온 말은 “동거”다.
이 역시 한 군데 함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인 형제자매들이 함께 있다.
서로 전혀 관계없이 모르고 심지어는 적대적이었던 죄인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이제 한 가족이 되었다.
그 사실이 기쁘고 감격스럽고 감사하다.
형제의 연합은 기쁨과 감사가 나누어지는 연합이다.

물론 이들이 함께 하는 일이 있다.
꼭 거창한 사업이 아니어도 하나님의 자녀 공동체가 할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하나님을 높이는 것,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
이것이다.
다음 시에서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했다.
그냥 “종”이 아니라 “종들”이며
사실은 “모든 종들”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의 연합과 동거 또한
마음에 맞는 몇 형제자매의 함께 함이 아니라
“모든” 형제자매와 함께 하는 연합과 동거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한다.

“모든 종들”의 여호와 송축.
이것은 요한계시록 4장의 찬양, 곧 예배가 바로 연상된다.
그 웅대하고 거룩하고 온전한 찬양, 예배가
형제들의 연합과 동거의 본질이다.
나의 시야는 너무 좁고, 내 생각의 규모는 너무 왜소하다.
그러니 내가 “모든 종들” “모든” 형제의 연합을 사모하는 일에서도
너무 모자란 것 아닌가!
마침 11월 하순부터 요한계시록이 묵상 차례다.
이때 내가 진실로 우주적 예배와 찬양을 사모하는 시간을 갖기를,
그것이 습관이 되기를 바라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