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2:1-9, 날이 오래도록 다 지키며 순종하여)

오늘 본문은 성경에서 아주 아름다운 몇 장면에 반드시 꼽힐 이야기에 속할 것이다.
요단 저편(동쪽)에서 먼저 땅을 차지하기를 요청했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이편(서쪽)의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약속을 끝내 지켰다.
그것은 모세 시절에 했던 약속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지도자가 교체되었을 때
고약한 마음으로 이전에 했던 말을 싹 잊은 듯이 행세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에서 말이 달라지기가 얼마나 쉬운가!
더구나 시간이 지나고, 시대가 바뀌면
이전의 약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단정지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 두 지판 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과연 얼마나 “오래도록” 집을 떠나고 타지에서 고생을 했는지
정확한 기간은 분명하지 않지만,
수 년, 혹은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세의 명령을 지켰고, 여호수아가 한 말에 순종했다.
그들은 모세와 한 약속도, 여호수아와 한 약속도 지켰다.
이렇게 하나를 지키면 두 약속을 지킨 것이 되고,
하나를 순종하지 않으면 두 약속을 다 깨뜨린 것이 된다.
그들은 얼마나 신실하고 현명했던 것인가!

이러한 공동체적 목적에
사실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모두 충실했음이 분명하다.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만 아니라 나머지 지파들 모두
순차적으로 땅을 점령하는 동안 다 같이 기다리며
먼저 얻은 땅에 같이 기거하며 공동의 부담과 책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제비뽑기에 의해 땅이 분배되고 순서가 정해졌음으로
누구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으며,
처음에 정착한 지파나 나중에 정착하게 될 자나
실제로는 모두 같은 기간 동안 함께 수고하고 기다린 것이었다.
그들 모두 “오래도록” 서로를 위해 신실함과 충성을 지킨 것이다.

아마도 신앙 여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 하나가
이 시간의 문제일 것이다.
처음에는 잘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이 변해간다.
많은 경우에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다.
시간은 곧 변질을 낳는 관문이 된다.
하루의 시작과 도중과 끝에도 생각이 달라지는데,
몇 년, 평생 동안에 흔들리지 않는,
변치 않는 마음과 삶을 견지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그러므로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
출애굽 직후 광야 생활의 첫 세대에 비하면
가나안 정복의 세대는 참으로 순종을 잘 하고 그러기를 “오래도록” 든든히 하였다.

특히 요단 동편의 두 지파 반은 그곳에 계속 남아 있던 자들이나
서편으로 와서 가나안 정복을 위하여 군사의 의무를 다한 자나
모두 똑같이 “오래도록” 기다리고 수고했다.
그들 모두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아니 하나님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병력이 다수 빠진 상황에서 그들은 외적에게 더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다고 하여 약속을 취하하지도 않았고
어떻게든 안 지킬 궁리를 하지 않았다.
그들은 고향과 집을 떠나 수년간 “오래도록” 밖에서 싸우고 있는 아들과 형제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였겠는가!
가나안 정복전에 참여한 병사들이 요단 동편으로 귀향할 때 지참하게 된 전리품은
당연히 고향을 지킨 자들과도 나눌 공동의 몫이었다.
고향에 남은 가족들이 없었다면 이들은 가나안에서 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모든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그리고 두 지파 반의 병사뿐 아니라 남아있던 가족들도
모두 이 “오래도록”의 시험을 잘 통과했다.
소수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이 귀한 수고를 감당한 것이
참으로 부럽고, 귀감이 된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성도는 따를 본보기를 충분히 가진 자요,
불순종에 빌미가 될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