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29:1-8, 나를 괴롭혔으나 이기지 못하였도다)

성전에 올라가는 길에는 나 혼자만 있지 않다.
그 길은 공동체의 길이다.
그 길은 “이스라엘”의 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성전에 올라가며 시편의 노래를 부른다.
지금 이들이 같이 부르는 노래는 무엇인가?
과거에 원수들로부터 당했던 괴로움과 고통의 기억이다.

그것은 상당히 긴 역사를 가진 슬픈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우리가 당했던 괴로움이 있다.
그것을 어찌 잊을까!
“내 등을” 밭 갈 듯이 하였던 자들의 만행을.
아, 어느 흑인노예 소유주가 그랬을까,
어느 고약한 영주가 그랬을까,
어느 강제수용소의 간수가 그렇게 했을까!
이 모든 고통에 더하여 가장 심한 괴로움은
성도가 믿음 때문에 당하는 아픔 아니겠는가.
육체의 고문 이상으로 영혼을 괴롭히는 악인들이 있었다.
많았다.
성경에는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가 있는가.
아마도 바벨론에 끌려가 거기 강변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던 유다 백성들의 고통만큼
아픈 일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부르는 그 노래를
“자기들을 위하여” 노래하라고 조롱하며 명령하는
그들을 어찌 잊을까!
그들은 유다의 포로에게 따르게 한 술을 퍼마시면서 그랬을 것이다.
‘찬송가 한 곡 뽑아봐~’

그러나 이 노래는 절망을 토로하기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이후에 다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 더한 일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다!
고문의 경쟁에서는 그들이 승리하였을지 모르지만
성도의 신념과 믿음을 꺾지 못했다.
그들은 성도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앗아가지 못했다.
하나님께 향한 간절한 사랑과 의지를 짓밟지 못했다.
누가 이겼는가?
성도가 이겼다.
그들이 나와 싸운 것이 아니라 감히 하나님과 싸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를 대적했다면 아무 소리도 못하는 나를 그들이 이겼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들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다.
내가 싸워서 그들을 이길 일이 없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처리하신다.
그들은 큰일 났다!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사 악인들의 줄을 끊으셨”다!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 그들에게 일어난 일.
그리고 성도는 이 사건을 기억하며 성전에 올라가면서 노래한다.
찬양한다.
감사한다.

성도에게도 괴로움은 있기 마련이다.
“등을” 밭 갈면 아프지 않겠는가.
늘 미움을 당하고 따돌림 받으면 괴롭지 않겠는가.
사실 성도는 더 괴로운 자다.
세상으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 죄로 인해 회개하며 괴로워한다.
성도에게 괴로움이 없다면 아마 이상할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이 패배는 아니다.
그것은 승패와 상관이 없다.
승리는 괴롭히는 자, 또는 괴로움 당하는 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기고 지는 것을 정하신다.
하나님께 속한 자,
어제 말씀대로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가 이긴다.

괴로울 때,
이것은 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반대로,
일이 잘되어 즐거울 때,
그것은 이기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자.
이기고 지는 것이 괴로우냐 평안하냐보다 더 중요한데,
성도의 이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