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삼서 1:1-8, 진리 안의 나, 내 안의 진리)

사도 요한은 앞의 짧은 편지에서
이미 “진리”와 “사랑”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다.
그리고 모두 “아는” 것과 “행하는” 것에서의 일치가 중요했다.
이 말씀은 이 편지에서도 동일하게 기록되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는 “진리”와 관련하여 세 가지가 언급된다.
“네게 있는 진리”,
“진리 안에서 행한다”,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

첫째, “네게 있는 진리”:
글자그대로는 이 편지의 수신자인 가이오가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진리를 지식으로 말한다면,
그는 그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진리를 모르는 자에게는 그 진리가 없다.
진리는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사실이요,
그리하여 죄인과 이 세상이 구원을 받는 사실이다.
이것을 그가 알고 믿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그에게 있는 이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할 ―나눌― 것이다.
그 안에 진리가 있는 자만이 그 진리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다.

또한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진리이신 예수와 가이오의―모든 성도의― 관계는
정확히 말하면 “네게 있는 진리”이면서,
‘진리 안에 있는 너’, 즉 ‘예수 안에 있는 너’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이미 하나님 아버지와의 연합의 관계를 강조하셨고,
그것이 예수와 성도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요한복음 14:10),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요한복음 15:4).
내가 예수 안에 거하는 것과 예수께서 내 안에 거하시는 것은 동일하다.
둘 중에 하나만 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둘 중에 더욱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것은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이
“그(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려 함”(3:7)이라고 표현한 내용 바로 그것이다.
내가 예수 안에 있게 되는 것은
예수께서 나를 그 안에 품으셨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를 발견한 것이 예수께서 나를 발견하심으로 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면 “네게 있는 진리”는
‘진리 안에 있는 너’요, ‘예수 안에 있는 너’다.
진리가 사물이나 지식이 아니라 예수라는 인물이므로
내 안에 진리가 있다, 내가 진리 안에 있다는 말은
내가 그 인물, 곧 예수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구원의 교리를 아는 것을 넘어서
그 구원을 주시는 예수와 함께 교제하고 배우고 사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둘째, “진리 안에서 행한다”로 연결된다.
그 안에 진리―예수―가 있는 자는 “진리 안에서 행한다”.
진리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진리 안에서 행한다”.
이것은 단도직입적으로 진리를 행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진리에 순종하고, 진리대로 사는 것이다.

“진리 안에서 행한다”의 반대는
‘진리 밖에서 행한다’이든지,
‘진리 안에서 행하지 않는다’일 것이다.
비진리, 불의, 죄를 행하는 것이 전자요,
예수를 알고 믿는다 하면서도 그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경우가 후자다.
나는 두 가지가 다 문제다.
나는 진리 밖에서 무능한 자가 아니다.
아주 유능하다.
그리고 오히려 진리 안에서 무능하다.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라는 말씀의 정반대다.

셋째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
진리는 개인적인 고상한 취미 영역이 아니다.
별자리에 대해 아는 것같이 진리를 알고,
산행을 즐겨하는 것같이 진리를 아는 것은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한 진리로 축소하는 것이며,
결국은 진리를 왜곡하는 것이다.
진리는 나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서 움직인다.
내 안에 소중하게 품고 다니면서 혼자 꺼내보고 독백하고 즐거워하는
사유재산이 아니다.
혹 그러한 자가 있어 그는 움직이지 않더라도,
진리가 살아서 움직인다.
진리가 그를 움직인다.
그리하여 그의 안에 있는 진리가 그의 밖으로 나와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며,
진리 안에 있는 그가 역시 진리 안에 있는 다른 형제를 발견한다.
진리 안에 있는 자는 “함께” 일하기 마련이다.
물론 별자리를 알고 산행을 좋아하는 자가
다른 사람과 “함께”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별자리를 위하여, 산행을 위하여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위하여, 또는 서로를 위하여 한다.
그러나 진리는 나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도구가 아니다.
진리는 성도가 그것을 “위하여 함께 일”할 존재다.
진리는 성도가 그를 “위하여 함께 일”할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