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이서 1:1-6, 아는 데서 행하는 데까지)

한 장 분량의 이 짧은 책은
영원에서 현실까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형제 사랑의 아름다운 연합까지,
진리로부터 미혹과 적그리스도까지,
그 다루는 내용이 아주 깊고 넓다.
본문에서 특별히 강조되는 단어는 “진리”와 “사랑”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와 “사랑”의 출처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온다.
대학마다 내세우는 ‘건학정신’ 또는 ‘이념’에는
거의 모두 ‘진리’가 들어간다.
이때 ‘진리’는 지식이요 학문이요 합리적 이성이다.
그리고 ‘사랑’은 보다 넓은 영역에 걸쳐,
고상하게 그리고 천박하게 이 사회를 풍미하고 있다.
대학이든, 사회든 오늘날 유행하는 “진리”와 “사랑”이
오늘 본문의 ―성경의― “진리”와 “사랑”과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는
바로 그 출처에 있다.
세상의 “진리”와 “사랑”은
사람의 생각, 그 시대, 유행·사조에서 나온다.
그러나 삼위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진리”와 “사랑”만이 영원하다.

그 영원함은 “우리와 함께” 함에서 그러하다.
세상에 영원한 존재는 없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영원하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성도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자다.
그리하여 “진리와 사랑”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한다.
세상의 “진리와 사랑”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무엇이 그것의 기준이 될 것인가?
없다.
진리의 기준, 사랑의 기준이 없다.
시대마다, 사회마다, 사람마다,
심지어는 한 사람의 생각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리하여 저마다 “진리와 사랑”을 외치지만 그것들이 충돌한다.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오직 삼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진리와 사랑”만 영원하며,
그것은 우리도 영원히 함께 거하게 한다.

그리고 이 “진리와 사랑”은
“아는” 데서 시작하여 “행하는” 데로 이른다.
사도 요한은 “진리를 아는 모든 자”와
“진리를 행하는 자”를 연결해서 말한다.
진리를 알지 못하면 진리를 행하지 못한다.
진리를 행하지 못하면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은 다분히 ‘행함’과만 관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아는 데서 시작한다.
“사랑은 이것이니”
이 말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요,
사랑이 무엇인지 알라는 뜻이다.
“사랑은 ···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인데,
사랑을 행하려면 계명을 알아야 한다.
사랑이 이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그 사랑을 행할 수 있다.
역시 사랑도 알지 못하면 사랑을 행하는 것이 아니요,
사랑을 행하지 않으면 사랑을 모르는 것이다.

나의 지식과 마음,
나의 영혼과 몸(‘오장육부’)이 함께 가지 않으면
제대로 아는 게 아니고 제대로 행하지 못한다.
사실, 내가 그렇다.
나는 행함보다 아는 것에 치우쳤는가?
아니다.
그렇다면 역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앎과 행함 사이에서,
또는 진리와 사랑에서 한쪽에 치우친 것이 아니라,
성숙함과 미숙함, 온전함과 부분적임,
가득 함과 모자람 사이에서 한쪽에 치우쳤다.
내가 진리와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하는가!
그러하도록 성령의 감화에
얼마나 순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