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23:1-16,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땅)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어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오고 있다.
그는 모세의 종으로, 그리고 “여호와의 종”으로 일평생을 섬겼다.
그는 애굽 땅에서 해방되는 유월절의 밤과
갈라진 홍해를 건너는 경험을 하였고
40년 후, 역시 갈라진 요단강을 건너
약속된 땅에 들어가 가나안의 모든 성읍들을 점령하며
이스라엘이 정착하는 것을 본 자다.
아니 그것을 직접 진두지휘한 자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최고령자로서 가장 많은 것을 겪었고,
그것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의 경험이었다.
이제 세상 떠나는 일을 앞에 두고
그가 인생을, 출애굽의 역사를, 가나안의 정복을 회고할 때
그가 내릴 결론은 오직 한 가지다.
하나님께서 행하셨다는 사실이다.
출애굽도 가나안 정복과 정착도 하나님께서 이끄시고 행하신 일이다.

출애굽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 분명하며,
광야 40년 동안 출애굽 1세대는 숱한 불순종의 역사를 썼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하는 과정은
앞의 역사와는 다르지 않은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잘 순종하였고,
딱 한 번을 빼고는 매번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쯤 되면 이들의 자의식에는 자신이 행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 않겠는가?
조금 겸손하게 표현하면
‘우리가 잘 싸우게 힘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잘 순종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일 것이다.
이것은 감사요 찬양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우리가 잘 했다’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사실은 그것에 마음이 더 간다.
강조가 거기에 더 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바리새인의 기도가 그러했다.

대놓고, 노골적으로 자기를 높이는 교만에 비하면
이것은 분명 겸손한 자의식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기서 자신(이스라엘)의 순종을,
잘 한 것을 전혀 말하지 않는다.
‘내가 잘 하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셨다’고 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나의 보조자가 아니시다!
여호수아의 고백은 이것이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서 행하”셨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셨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셨다.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다.
이스라엘은 지금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 있다.
마지막 문장은 오늘 본문에서 세 번이나 언급된다.

이 땅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원수들을 쫓아내시고
성읍을 점령하도록 친히 싸우셨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의 노력으로 차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것은 오늘날도 성도들의 나눔에서 귀에 익은 소리다.
그러나 여기에 자신이 뭘 한 것이 더해지는 것이 거의 일반적이다.
간증은 거의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자랑,
그리하여 듣는 이의 기를 죽이는 경우가 참 많다.
여호수아는 지금 그런 식의 위장된 자기자랑을 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한 마디, ‘하나님께서 친히 하셨다.’
그 말만 반복하고 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아름다운 땅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땅이 아름다운 땅인 이유는
가나안의 토질, 지형, 기후, 특히 비옥도 때문이라고 할 것은 아니다.
이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서 적을 물리치고 정복하신 땅이기에 아름다운 땅이다.
땅이 비옥하냐 아니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는가 아닌가가 땅의 아름다움을 결정한다.
롯이 택한 땅은 더 비옥한 땅이었지만
결코 아름다운 땅은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순종의 대명사가 된 광야에서의 이스라엘은 황무지를 걸었지만
거기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가 있어 아름다운 땅이었다.
하나님이 주시고 이끄시고 먹여주신 땅,
이것이 아름다운 땅이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고백이요 간증이다.

그리고 내가 따라 할 고백이요 간증이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결론은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고 싸우시고 주신 땅이므로―
거기서 하나님을 위해 살라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하며,
스스로 조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그들의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과 혼인하지 않는 것,
그것은 내가 주인으로서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삶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므로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