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145-160,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시인이 처한 고난은 심각한 상황이다.
그는 “악을 따르는 자들”, “악인들”, “핍박하는 자들”, “대적들”에게 에워싸였다.
그들은 모두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가 아니라 복수로서 “그들”이다.

이것을 시인은 재판정에 끌려온 피고인으로 비유한다.
그는 이 법정에서 그를 잡아넣으려는 자들에게 어마어마한 압박을 받고 있다.
그것은 그저 형량의 문제가 아니다.
죽고 사는가, 생사가 달려있다.
법정에서 피고인이 두려워할 자는 누구인가?
피고의 유죄를 입증하고 그 죄의 대가를 받게 하려는 검사다.

만일 검사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면,
검사의 논거들이 죄다 틀렸음을 밝힐 수 있다면,
그러면 판사가 피고인을 유죄로 단정하지 못 할 것이다.
아, 피고인에게 도울 자가 필요하다.
그가 누구인가?
그렇다.
바로 변호사다!
그리하여 그는 부르짖는다.
“나를 변호하”소서!
누구에게 부탁하는 것인가?
변호사에게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변호할 수 없다.
그 능란한 검사의 논증들을 반박할 능력이 없다.
그에게는 변호사가 절대로 필요하다.

그런데 그가 변호사를 불러달라고 부르짖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변호사가 이미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재판정에는 검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도 있다.
분명 검사의 논고가 먼저 있었다.
검사는 증거 조사를 마치고 피고의 범죄 사실과,
그에 대한 법률 적용에 관한 의견을 진술한다.
그는 법률 전문가 아닌가?
그러므로 그의 논리는 정연하고 그가 제시하는 증거들은 피고를 꼼짝 못하게 한다.
가만히 있으면 검사의 논고대로 그는 유죄가 된다.

이때 검사를 물리칠 변호사가 있다!
그가 이 법정에 피고와 함께 있다.
그는 누구인가?
주님이시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 법정은 하나님께서 판사이시며
마귀가 검사노릇을 하고 피고인의 변호사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께서 피고인을 변호하신다.
시인은 애가 닳아 변호사에게 자신을 변호해달라고 호소하지만,
사실은 검사의 논고가 끝나면 변호사의 변호가 시작될 것이다.

예수의 변호는 검사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할 것이다.
예수는 진리이시므로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검사인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한복은 8:44)다.
그러므로 그의 논고는 모두 거짓이다.
그저께 본문에서와 같이 ‘허무한 속임수’다.
그러므로 마귀가 검사노릇을 할 때 두려워할 것은 없다.
그가 공격하는 모든 유죄의 논고들이 다 거짓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진실만이 위력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변호자 예수는 진리를 진실하게 말한다.
그는 우리를 마귀 검사의 궤계에서 구하는 변호사다.
변호사의 진실한 변호는 판사의 판결에 직결된다.
정의롭고 공정한 재판장은 검사의 논고가 거짓임이 드러났고,
변호사 예수의 진실한 변호가 진리인 것을 확인하고
피고의 무죄를 선언한다.
즉 피고는 예수의 변호로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시에서 “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의 의미다.
최종적으로 나를 살린 것은 무엇인가?
‘피고 이병철은 무죄다’라고 선언하는 재판장의 ‘말’이다.
판사의 최종 판결이 재판정의 사람들 귀에 들리는 그의 ‘말’이다.
재판장의 ‘말’에 피고의 유죄와 무죄가 달렸다.
그의 ‘말’에 피고의 생사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피고를 살리는 것은 예수의 변호요,
궁극적으로 재판장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하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라는 고백이 나온다.
나의 생명은 주께서 이미 나를 살리시겠다고 하신 말씀에 있으며,
그 말의 약속을 수행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를 위한 변호―그것도 예수의 말씀이다―에 있으며,
그 변호를 듣고 최종 판결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