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Octo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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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1 묵상: 꺾일 멍에

by 이 병철

(예레미야 28:1-17, 꺾일 멍에) 예레미야가 아예 멍에를 만들어 자기 목에 걸고, 또한 각 나라의 사신들을 통해 그들의 왕에게까지 멍에를 보내자, 하나냐라는 선지자가 반기를 들었다. 그는 예레미야가 말하는 멍에, 즉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하나님이 꺾으셨다고,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다. 심지어는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기까지 했다. 예레미야의 목에 메인 멍에는 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

2018.10.20 묵상: 그리하면 살리라

by 이 병철

(예레미야 27:12-22, 그리하면 살리라) 시드기야 왕과 유다의 백성들 앞에 두 가지 말이 있다. 그 둘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선지자들의 예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두 말이 서로 대립된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고 어떤 예언을 따라야 할까? 우선 두 주장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나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라는 형통의 예언이다. 다른 하나는 “바벨론 왕을 섬기”면 ─“바벨론 왕의 […]

2018.10.19 묵상: 메야 할 멍에

by 이 병철

(예레미야 27:1-11, 메야 할 멍에) 멍에란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하기 위해 마소의 목에 얹는 장치다. 그것으로 농민은 노동력을 절감하여 생산성을 높이지만 멍에를 메는 소나 말에게는 생산성과 무관하게 고통이요 억압이다. 그리하여 멍에라는 단어는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구속이나 억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표현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고 줄까지 연결하여 정말 소처럼 멍에를 메고 다니라고 […]

2018.10.18 묵상: 하나님 편에 남아 있는 자들

by 이 병철

(예레미야 26:16-24, 하나님 편에 남아 있는 자들)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에 두 종류의 반응이 나타났다. 어제 본문에서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붙잡고 “네가 반드시 죽어야 하리라”고 대들었다. 오늘 말씀에서는 “고관들과 모든 백성이” 그리고 “그 지방의 장로 중 몇 사람이” 그리고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의 편에 섰다. 이들이 다르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여호와의 이름”을 […]

2018.10.17 묵상: 예배하는 자에게

by 이 병철

(예레미야 26:1-15, 예배하는 자에게) 예레미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성전 뜰에 서서”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다. 왜 “성전”인가? 바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유다는 위기에 처해있다. 내적으로는 죄악이 팽배하고 외적으로는 국제적인 분쟁에 휘말려 있다. 그때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라면 그래도 난세에 하나님을 찾는 자들 아닐까? 그러면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일까? 패역한 […]

2018.10.16 묵상: 심판의 흥겨운 노래

by 이 병철

(예레미야 25:30-38, 심판의 흥겨운 노래) 모든 나라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 누구도 예외가 없고 어떠한 면제도 없다. 이것은 가학증의 잔혹함이 아니다. 이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다. 세상의 법정들에서 성행하는 ‘있는 자들의 특권과 없는 자들의 억울함’─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에 질린 사람들은 예레미야 25장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께는 있는 것과 없는 것, 유식함과 무식함, 강함과 약함의 차이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

2018.10.15 묵상: 모든 나라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

by 이 병철

(예레미야 25:15-29, 모든 나라에 임한 하나님의 진노) 이 말씀은 참으로 무섭다. 하나님께서 “모든 나라에” “진노의 술잔”을 받아 마시게 하신다.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아무도 거절할 수 없다. 모두 마셔야 한다. 누구도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아마도 하나님이 너무 한다고 욕할 빌미가 충분히 될 부분일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구실도 다 동원하여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의 […]

2018.10.14 묵상: 꾸준히, 끊임없이

by 이 병철

(예레미야 25;1-14, 꾸준히, 끊임없이) 요시야 왕 시기는 유다왕국의 마지막 기회였다. 그때 이스라엘 역사에서 최대의 개혁이 단행되었다. 그러나 놀랍고 불행한 것은 요시야의 통치가 끝나고 이어지는 네 왕의 시기가 그 개혁과 정반대되는 모습이었다는 사실이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이 가운데 여호야긴 외에 세 명이 모두 요시야의 아들이다─ 이들이 통치하는 22년 6개월 동안 유다는 하나님께 철저히 불순종하는 망하는 […]

2018.10.13 묵상: 좋은 열매, 나쁜 열매

by 이 병철

(예레미야 24:1-10, 좋은 열매, 나쁜 열매) 드디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심판의 말씀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 시드기야가 재위 중에 있기는 하지만 유다의 왕의 운명은 바벨론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그들이 왕을 잡아가고 새 왕을 임명한다. 유다는 이제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사람들과 유다에 남거나 애굽으로 피신한 사람들이다. 전자는 […]

2018.10.12 묵상: 거짓 선지자들

by 이 병철

(예레미야 23:23-40, 거짓 선지자들) 어느 시대나 인간이 영적으로 빠지는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다른 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긴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는 것이다. 선지자는 사람들 사이에 인기가 없고 거짓 선지자는 권위를 얻는다. 이것이 역사에서 늘 나타나는 영적 함정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뜻과 맞지 않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