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Sept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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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9.21 묵상: 내게 가까운 말씀

by 이 병철

(로마서 10:5-13, 내게 가까운 말씀) 율법을 행함으로써 얻는 의는 죄인인 인간에게는 너무 먼 말씀이다.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율법은 인간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기는 하지만 의롭게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는 이와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죄인은 믿기만 하면 된다. 이것을 바울은 신명기의 […]

2018.9.20 묵상: 믿음에서 난 의

by 이 병철

(로마서 9:30-10:4, 믿음에서 난 의) 유대인과 이방인에 대한 차이는 하나님께 대한 의문의 여지가 있었다. 왜 유대인은 선택하고 이방인은 배제되었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실 때 그것은 그를 통하여 만민이 복을 얻기를, 즉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는다. 그것은 그 역도 진리임을 드러낸다. “내가 […]

2018.9.19 묵상: 주께서 남겨두지 아니하시면

by 이 병철

(로마서 9:19-29, 주께서 남겨두지 아니하시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시는가? 많은 사람이 갖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선택’하셨다고 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른 누구는 배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선택과 배제가 있다. 하나님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

2018.9.18 묵상: 하나님의 긍휼의 약속

by 이 병철

(로마서 9:1-18, 하나님의 긍휼의 약속) 바울은 동족 이스라엘을 생각할 때에 “큰 근심”이 있고,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 약속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는 그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바울은 실망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더 […]

2018.9.17 묵상: 주권적 사랑

by 이 병철

(로마서 8:31-39, 주권적 사랑) 율법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참으로 좋은 선물이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길을 가르쳐주고, 인간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확실히 알려준다. 율법은 의의 길을 보여주며 죄인임을 깨닫게 해준다. 그런데 인간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므로 정작 율법을 통해서 얻을 것은 정죄뿐이다. 율법은 인간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지 못한다. 그러나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

2018.9.16 묵상: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

by 이 병철

(로마서 8:18-30,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복음은 한 사람(영혼)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 이상의 진리를 담고 있다. 복음의 범위는 나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유대인과 이방인, 구약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류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바울은 […]

2018.9.15 묵상: 육신과 몸과 영

by 이 병철

(로마서 8:1-17, 육신과 몸과 영) 로마서 8장은 많이 읽고 외우고 듣는 말씀이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렵다. 신학적 논쟁이나 남을 가르치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면서 내 삶이 변화되도록 이끄심을 받으려는 ‘묵상’이므로 그 뜻을 알아야 그에 순종하는 것이 가능할 텐데, 본문의 내용이 어려우니 묵상도 어렵다. 그러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고 지혜를 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

2018.9.14 묵상: 절규

by 이 병철

(로마서 7:14-25, 절규) 본문이 신자를 묘사하는가, 불신자를 묘사하는가, 더 정확히 말하면 바울 당시에 예수를 믿어 하나님께 의로 여겨진 자인가, 율법 속에서 아직도 전전긍긍하는 자인가에 대해 논쟁이 이어진다. 두 가지 모두 타당한 근거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신학적 논쟁보다도 내게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절규’다. 그것은 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탄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서 […]

2018.9.13 묵상: 죄가 기회를 타서

by 이 병철

(로마서 7:1-13, 죄가 기회를 타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다.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즉 의에 대하여 산 자가 된다. 예수를 믿는 것은 단지 신조나 교리를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연합되어 죄에 대해 죽었으므로 […]

2018.9.12 묵상: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by 이 병철

(로마서 6:15-23,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바울 사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 의로 여겨진다고 단언했다. 그럼 예수를 믿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으로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어차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니 여전히 마음대로 죄에 뒹굴어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