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from Marc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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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3.21 묵상: 아버지의 애통함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4:1-10, 아버지의 애통함) 이 책의 5장 중에 1, 2, 4장이 “슬프다”로 시작한다. 모두 유다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폐허를 슬퍼한다. 그것은 단지 전쟁의 패배와 상흔만이 아니라 그 근본 죄로 인한 탄식이다. 오늘 본문은 “딸 내 백성”을 슬퍼하는 아버지의 애통함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을 “딸 내 백성”으로 부르는 분은 그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탄식 소리가 기록되고 […]

2018.3.20 묵상: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3:55-66,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예레미야애가에서 “원수” 또는 “대적”은 둘로 구분되는 것 같다. 하나는 이스라엘(유다)을 멸망시킨 나라들이다. 다른 하나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대적하는 자들이다. 본문은 후자에 속한다. 어제 말씀, 3:52의 “나의 원수”는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유일한 선지자 예레미야를, 그들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전한다는 이유로 매국노로 매도하고 박해하는 유다의 지도자들과 선지자들과 백성들이다. 그들은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으므로 결코 […]

2018.3.19 묵상: 여호와께서 돌아보실 때까지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3:40-54, 여호와께서 돌아보실 때까지)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한다. 회개란 무엇인가?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선지자가 하나님께 돌아가자고 권할 때 그것은 성도로서 그렇게 해야만 하는 당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시는 조건이나 자격은 아니다. 즉 ‘내가 회개했으므로 나를 용서해주시오’라고 하나님께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는 ‘내가 회개했으므로 나는 용서받았다’라고 모든 것이 내 손에 […]

2018.3.18 묵상: 주의 인자와 긍휼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3:19-39, 주의 인자와 긍휼) 절망 가운데 있을 때 명약은 ‘소망’이다. 어쨌든 더 좋은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하고 바라는 중에 절망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길지도 모른다. ‘소망’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더 가치를 두는 것은 이러한 가능성 때문이다. 세상에서 소망의 효능이란 밑져야 본전이라는 사실이다. 지금 선지자도 절망 중에 소망을 말한다. 어쩌면 소망을 가질 수 없는 […]

2018.3.17 묵상: 누가 맞는 것인가?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3:1-18, 누가 맞는 것인가?) 그것은 분명 “여호와의 분노의 매”다. 하나님도 모르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그런데 “분노의 매”라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인데 누가 이 매를 맞는 것일까? 당연히 하나님을 계속해서 거역해온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매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말씀하셨던 경고를 전혀 듣지 않았다. 이들은 충분히 맞을 짓을 했다. 그런데 이 매는 사실 […]

2018.3.16 묵상: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2:11-22,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선지자가 “눈이 눈물에 상하며” “창자가 끊어지며” “간이 땅에 쏟아”지는 고통을 느끼는 것은 예루살렘의 패망 때문이다. 그 패망은 어마어마한 파괴를 야기했다. 당연히 승자와 패자는 파괴의 범위와 상태에서 반비례한다. 예루살렘의 파괴는 “바다 같이” 컸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무도 더 이상 예루살렘을 고쳐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누가 너를 고쳐 줄소냐” 이것이 […]

2018.3.15 묵상: 온갖 강하고 귀한 것들을 치심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2:1-10, 온갖 강하고 귀한 것들을 치심) 참으로 “슬프다” 원수들이 노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주께서 어찌 그리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아, 하나님의 진노보다 무서운 것이 있는가? 하나님을 노하게 한 것보다 더 큰 죄가 있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진노하셨는가? 아, 오늘 본문에는 온갖 강하고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목록이 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자랑거리로 쓰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으로 적혔다! […]

2018.3.14 묵상: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1:12-22,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유다의 멸망, 예루살렘의 파괴는 원수들에게는 노리개가 되었고 백성에게는 고통과 수치가 되었고, 선지자에게는 회개와 탄식이 되었다. 그러나 이 탄원에 하나님의 응답은 아직 없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그를, 예루살렘을, 유다를 위로하는 자가 없다. 아마도 그리하여 탄식자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붙들고 말한다.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나의 고통과 같은 것이 있는가 볼지어다” 이 […]

2018.3.13 묵상: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by 이 병철

(예레미야애가 1:1-11, 나중을 생각하지 아니함이여) 아, 예레미야 애가! 지난번 예레미야를 묵상할 때와 같이 긴장감이 몰려온다. 나는 다시 나와 이 세상의 죄의 현실에 참으로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 “슬프다 이 성이여!” 예루살렘이 멸망했다. 제사장과 왕과 주민들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데 어찌 망하랴 했던 소망은 헛된 것이 되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외롭게 전했던 유다의 멸망이 사실이 되었다. “전에는” 영광스러웠던 이 […]

2018.3.12 묵상: 로마 출장

by 이 병철

(사도행전 28:16-31, 로마 출장)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과 동역자들이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변방 시골 사람들이 중심 수도에 이르렀고, 더구나 식민지의 피지배자들이 제국의 지배자들 속에 들어갔으며, 그 모습이 죄수의 신분이니 얼마나 위축되고 긴장되는 일인가. 그러나 바울은 전혀 요동하지 않는다. 그는 끌려 왔지만 자신의 일터에 온 자와 같다. 그는 자기 직장에 출근한 회사원과 같다. 그는 지금 일하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