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5:1-11, 하나님과 화목한 자의 즐거움)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
죄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이 죄 아래에 있고,
그리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함과 인격으로 교제하기를 원하셨던 인간의 타락을
예수의 피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고 하시는 것은
바로 이 대속과 구원과 회복 때문이다.
그러면 하나님과 사람을 갈라놓았던 죄의 문제가 해결되며
원수의 관계가 화평으로 바뀐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

우리는 예수를 믿어 하나님과 화목한 자다.
그리고 이제는 그 화평을 누리는 자다.
그러면 하나님과 화평, 화목을 누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죽고 난 뒤에 천국에 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답게 사는 것을 특히 뜻한다.

세상에서는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환난이 닥친다.
근본적으로 인간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로
창조의 아름다운 질서가 깨진 상황 속에 인간은 산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의 뜻과는 달리
이 세상은 죽음이 있고, 질병과 사고와 갈등과 격차와 차별이 생기는 곳이다.
이러한 환난은 창조 시의 선하고 아름다운 상태와 다른 것이어서
인간에게 슬픔과 고통과 파괴적인 변질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자는 타락의 징벌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므로
이 세상에서의 삶도 다르다.
그에게 환난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바울은 그 이유를 명시한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환난은 고통을, 고통은 불평과 포기를, 그것은 절망을 낳는다.
그러나 성도는 다르다.
그것은 예수께서 다르게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의 낮아짐과 십자가의 고통을 인내로써 잘 견디셨고,
결국 그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구원을 죄인들에게 주심으로
세상에 궁극적인 소망을 낳으셨다.

성도도 이와 같이 사는 자다.
성도는 환난을 만나면 하나님을 의지하여 잘 견딘다.
이 인내를 통해 더욱 단련되고 견고해진다.
그리하여 모든 불순물이 제거된 정금과 같은 자로 남게 될 소망을 성도는 얻는다.
환난은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지만
성도는 그 과정을 통해 소망을 얻으므로 그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성도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환난 속에서 즐거움으로 귀결될 소망을 품는다.
환난을 잘 견뎌 더 강해지고
결국 환난을 이기는 최종의 모습을 소망하는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을 알면 성도는 지금 환난 중에도 ─환난이 다 지난 뒤가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아, 이 신비로운 선물을 성도는 받았다.
이 세상에서 환난을 면하는 특수한 비결을 얻은 것이 아니라
환난을 잘 견뎌 더 견고해지는 힘을 얻었다.
하나님과 화목한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인내와 연단을 감당한다.
이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감사한 일은 즐거움을 낳는다!

하나님이 주신 이 선물들의 연결고리를 생각하면
내가 조금만 수가 틀려도 쉽게 불평하고 악한 마음을 갖고 약해지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악순환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아, 천국 이전에 이미 이 세상에서 누릴 즐거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