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4:13-23,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시는 의로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궁극적인 목표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세상의 죄로 물든 나라가 아니라 오직 의로운 나라다.
그런데 여기에 죄인들을 백성으로 부르신다.
이 나라에 죄인이 들어갈 수는 없지만
하나님은 “믿음에서 난 의”로 그것을 가능하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이다.

예수 믿는 이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해주셨지만
그가 완전히 의인으로 변화된 것은 아직 아니다.
그것은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 다시 오심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여기에서 구현되는 하나님 나라인 성도들의 공동체는
아직 문제가 많고 미완성 상태다.
여기는 장차 올 “새 하늘과 새 땅”의 그림자요,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장소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형제를 존중하는 연습이다.
그리하여 성경은 거듭 ─예수님도 바울도─ 형제를 비판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을 “다시는 서로 비판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예수 믿는 이는 모두 한 형제다.
그들 모두의 아버지와 주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형제를 비판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아버지이시며 주이신 하나님을 비판하고 업신여기는 것이다.
믿음이 가장 큰 구별을 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자.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
형제와 형제 아닌 자가 믿음 여부로 나뉜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는 하나님께서 허용하시고 인정하시는 다양성이 있으며
이것은 서로의 차이가 아니라 존중할 바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이들이 이제는 누구를 믿을 것인가,
하나님이 계시는가, 예수가 하나님이신가
이런 논쟁으로 나뉠 일은 없기 때문이다.
믿음 안에서 진리가 이루어졌다.
그러면 남는 것은 기껏해야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어떤 날이 중요한가 정도의 문제다.
이것은 형제들을 나눌 수 있는 구분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정도에 대해 다 받아들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로 형제를 판단하고 배제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다.

이런 것을 덮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함께 똑같이 힘을 모을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고 누리는 일이다.
예수를 믿게 하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시다.
오직 성령 안에만 의가 있다.
성령께서 예수를 믿고 의롭다고 여겨지게 하신다.
이렇게 믿음에서 난 의를 얻는 자는 평강과 희락을 위해 부름 받은 자다.
그것은 세상에서 성령 없이, 성령 밖에서 이루려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아니다.
세상은 다수결로 의를 결정하고 전쟁이 없으면 평화라고 하고
몸의 감각을 즐겁게 하면 희락이라고 한다.
세상은 성령 없이 어떤 것과도 ─불의와도─ 타협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것을 차별하지 않는다고 한다.
─예수 믿는 이만 차별하면 된다!!!─
그러나 성령 안에서 이루는 의와 평강과 희락만이 진실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성령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 성령 밖에서 세상이 의와 평강과 희락을 운운한다.
그러나 믿는 이들이 여전히 불의하고 서로 싸우며 슬픔과 낙망으로 찌들어있다.
참으로 모순된 상황이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로마제국 시대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더욱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누리고 있다고 헛된 자부심에 쌓여 있던 이교도들이
결국 예수 믿는 이들의 참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보고 무엇이 진짜인지 알게 된다.
그들의 삶이 가짜인 것을 알게 된다.
이와 똑같은 일이 이제 성도들을 통해 일어나야 한다.
이렇게 전도가 안 되는 세상에서,
이보다 더 어려웠던 초대 교회 시대의 성도들이 살았던 대로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고 사는 것만이 성도의 답이다.
그것이 능력 있는 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