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9-21,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어제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어 의롭다 여김을 받는 성도의 삶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혔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삶’이다.
그것을 오늘 본문은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우선 우리 삶의 대상을 주목하면,
“형제”, “박해하는 자”, “스스로”, “주”다.
“형제”와 “주”만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 삶의 중심이며 중심 대상이지만,
사람은 누구까지를 대상으로 할까, 이것이 흔한 고민이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단호하다.
“아무에게”나, “모든 사람”이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것과 똑같이
내가 성도로서 관계 맺는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교회와 세상의 구분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자 또는 나를 좋아하는 자와
내가 싫어하는 자 또는 나를 싫어하는 자의 구분이 없다.
글자 그대로 “모든 사람”이다.
그리고 나는 이 말씀 앞에 가장 큰 부담과 좌절과 변화의 소망을 품는다.
나는 성경이 하지 않는 사람 구분과 차별을 해왔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이 말씀을 나는 ‘내가 좋아하는 몇 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고쳐서 적용했다.
그것이 편하고 내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정색을 하며, 아니 꾸짖으며
그런 것은 누구나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도 하지 않느냐고 되묻는다.
그렇다.
그것은 누구나 한다.
그러나 성도는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대로 살아가는 평균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을 순종하는 자다.
그러면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
하나님은 죄인에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에게,
심지어 예수를 박해하고 조롱하는 원수들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사람 앞에서 선을 도모”하는 자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사랑, 우애, 존경, 부지런함, 소망, 즐거움, 인내, 기도, 공급, 대접, 축복,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기, 공감, 겸손, 선대함, 화목, 원수를 도움…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극소수에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는 상식이다.
나를 세상 사람이 다 하는 것을 하는 자로 만들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아니다.
예수의 대속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그것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결과요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는 삶이다.

나에게 이 지독한 편협함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나는 그저 나 자신을, 그리고 이웃과 하나님을 속이지 않고
내 속의 죄에 대해서 솔직하고,
또한 그것을 넘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회복을 위해
참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실천적으로 순종하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