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1-8,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사람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
이 질문은 엄밀히 말하면 로마서의 내용에 부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단언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어떻게 하면 의로워질 수 있는가를 로마서에서 논하지 않는다.
물론 그에 대해 논한다.
그의 대답은 죄인이 의로워질 수 있는 길은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의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한다.
이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누구도, 어떠한 노력으로도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다.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은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여겨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예수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예수를 믿는다고 죄인이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이다.

구원은 인간이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을 위해 인간이 만족시킬 수 있는 조건과 자격이란 없다.
이제 바울이 언급하는 “거룩한 산 제물”, “영적 예배”는 모두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그 결과를 말한다.
오늘 본문은 구원받은 자의 변화된 삶이란 무엇인가를 말한다.
다시 한번 반복하면,
변화된 삶의 결과로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결과로서 삶이 변화된다.

그러면 구원을 받은 자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 답은 본문 1, 2절인데,
두 구절에서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과 “하나님의 ··· 기뻐하시고”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란,
사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함을 말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
이 둘은 같은 의미다.
사실 죄인이 믿음으로 의롭다고 여겨지는 영적 세계에서 더욱 현실적인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는 과정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분별해야만 그것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도의 일생은 학습의 과정이지 단번에, 자동으로 터득된 행운의 사건이 아니다.
죄인이 믿음으로써 성도로 거듭나면, 그는 이제 영적으로 자라난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분별하는 과정이다.

아마도 믿고 나서도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분별하지 않기 때문, 분별하는 것의 중요성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분별하지 않고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면 행하지 못한다.

성령으로 변화되는 성도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과정이다.
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이 없이 자신의 속단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못 확신하는 일이 꽤 많다.
그것은 더 무서운 결과에까지 이른다.
나의 숨 쉬는 순간만큼 내게 반복적으로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분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