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8-30, 피조물의 탄식과 고통)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복음은
한 사람(영혼)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 것 이상의 진리를 담고 있다.
복음의 범위는 나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죄인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유대인과 이방인, 구약시대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인류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 이상이다.
바울은 본문에서 “피조물”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피조물”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별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앞으로 올 세대까지 포함하며
누가 그 안에 속할지 모르므로 모든 인간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인간 이외의 모든 존재가 여기서 말하는 “피조물”이다.
이 모든 피조물이 인간들 가운데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고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여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조 이후에 이 세상에 죄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잘 안다.
이미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아 죄를 범했다.
그리고 인간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세계가
인간의 범죄로 인한 벌(하나님의 저주)을 받고 있다.
피조물들은 “자기 뜻”─자기 잘못─으로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인해 피조물이 고통을 겪고 탄식하고 있다.
내 귀로는 그 탄식을 듣지 못하고 그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지만
바울은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이 세상의 문제와 고통과 탄식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동물들은 최강자를 가리기 위해 수놈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다.
맹수는 초식동물을 먹이로 찾으며,
빙하기로 지구온난화로, 여러 재난으로 모든 피조물이 고통을 겪었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만 민감할 뿐인데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인간의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탄식하고 있는 것을 들려준다.
그러면 성도는 피조물의 고통과 탄식에 민감해야 한다.
그것을 듣고 느껴야 한다.
그리고 피조물이 요구하는 것도 알아야 한다.
모든 피조물이 눈물을 흘리며 “해방”을 원한다.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으로부터의 해방,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것은 오늘날 세상도 알고 있는 환경문제
─대기 및 수질 오염, 이상 기후, 삼림의 황폐화 등등─에서 바로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세상은 알 수 없는 고통과 탄식까지도 성도는 알아야 한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인간들의 구원이다.
그래야 만물을 하나님의 청지기로 관리할 인간이 회복됨으로써
모든 피조물 자신도 회복되기 때문이다.
곧 인간이 죄에서 해방되어야 만물의 고통과 탄식이 멈추게 된다.

죄인이 예수를 믿어 구원받을 때
그는 모든 피조물을 위한 ‘복음의 제사장’(15:6)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이다.
즉 구원은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회복되는 것이다.
만물의 회복은 나의 구원만큼 중요하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내가 이 세상에서의 나와 큰 차이가 있듯이
모든 피조물의 회복도 당연히 이 세상에서와 하나님 나라에서의 모습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완전한 것이 마지막에야 이루어진다고
지금 이 자리에서의 회복을 위한 노력을 간과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진정으로 만물─우주 천체, 지구의 생물들, 환경(생태계), 정치·사회·경제의 구조들, 인간의 문화 등등─의 회복이
아직은 제한된 지상의 수준으로라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실제로 애를 써야 한다.

바울은 모든 피조물에 대한 성도의 사명을 말한 뒤에
바로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을 강조한다.
그것은 특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즉 우리가 만물이 고통과 탄식에서 해방되는 것,
만물의 회복을 위해 제대로 기도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다.
이에 대한 나의 기도 제목은 아주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어쩌면 아예 기도하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나의 이 연약함을 성령께서 도우시는데,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
아, 나는 성령께 기도를 배워야 한다.
만물을 위한 기도, 환경(생태계)을 위한 기도,
특히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광스러운 자유를 누리도록,
즉 전도와 온전한 믿음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