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8:1-17, 육신과 몸과 영)

로마서 8장은 많이 읽고 외우고 듣는 말씀이지만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렵다.
신학적 논쟁이나 남을 가르치는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과 친밀하게 대화하면서 내 삶이 변화되도록 이끄심을 받으려는 ‘묵상’이므로
그 뜻을 알아야 그에 순종하는 것이 가능할 텐데,
본문의 내용이 어려우니 묵상도 어렵다.
그러나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고 지혜를 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묵상이므로
어려움이 곧 묵상의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본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있고
이와 쌍을 이루며 대조되거나
또는 유사해 보이면서 다른 뜻을 갖는 단어도 있다.
‘육신’과 ‘영’이 가장 많이 쓰인 단어다.
여기에 ‘성령’을 같은 단어로 더 추가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용 횟수는 이에 비해 적지만 ‘몸’이라는 단어가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육신’은 ‘몸’과 다르다.
‘몸’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담과 하와의 살과 뼈로 된 신체다.
타락한 이후에도 ‘영혼’과 함께 나를 구성하는 요소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누구는 ‘영’과 ‘혼’을 분리하기도 하지만─과
눈에 보이는 ‘몸’이 인간의 구성요소다.

‘육신’은 ─어느 주석에서 인용을 하면─
“죄를 지으려는 성향에 기여하는 인간 속성의 복합체로서,
‘죄악 된 옛 본성’으로도 알려져 있다. ···
구원받지 못한 비그리스도인의 상태를 가리킨다.”

‘영’은 단적으로 “성령”이다.
16절에서만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여기서 “우리의 영”은 “성령”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성령이 내주하시는 우리의 ‘영혼’일 것이다.

‘육신’과 ‘영’은 정반대이며 적대적이다.
그것은 죄와 의의며, 마귀에 속하는 것과 하나님께 속하는 것,
사망과 생명(영생), 곧 멸망과 구원이다.

‘육신’, 곧 죄로 말미암아 ‘몸’이 죽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몸’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여전히 죄가 벌어지는 현장이다.
그러므로 ‘영’(성령의 소욕)으로써 ‘몸’이 하는 행실을 죽여야
─죄짓는 일을 중단하고 의를 행하도록 해야─
나는 산다.
그리고 ‘영’(성령)의 능력으로 나의 “죽을 몸도 살리”신다.
즉 내 몸은 죄로 인해 죽음을 거치지만
예수를 믿었으므로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으로 마지막에 부활한다.

결론은 분명하다.
내가 ─더욱 구체적으로 내 ‘몸’이─ ‘육신’을 따를 것인가, ‘영’을 따를 것인가!
내 ‘몸’이 누구의 ‘종’이 될 것인가!
누구의 도구가 될 것인가!
이것이 내가 매 순간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영’을 따르도록 도우심을 간절히 의지하며,
그럼에도 여전히 ‘육신’의 헛된 즐거움을 좇는 내 ‘몸’으로 인해
탄식하고 절규하는 성도의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