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15-23,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바울 사도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께 의로 여겨진다고 단언했다.
그럼 예수를 믿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원을 쟁취하기 위해 자신의 노력으로 믿음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반면에 어차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니
여전히 마음대로 죄에 뒹굴어 있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이다.
즉 예수와 완전히 결합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신 것과 같이
우리는 죄에 대해 죽는 데서 예수와 결합되어야 한다.
또한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죽음에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예수의 부활에 연합되어 하나님께 대하여, 즉 의에 대하여 살아나는 것이다.
이전에는 죄에 대하여는 살아있고 ─죄는 역동적으로 짓고─
의에 대하여는 죽었던 ─도저히 의를 행할 줄 몰랐던─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결합됨으로
이제는 죄에 대하여 죽고 ─죄를 짓지 않고─
의에 대하여는 살게 ─의를 행하게─ 된다.

믿음은 곧 예수와의 연합이요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죄를 짓지 않으신 것과 같이 나도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행하시는 것과 같이 나도 의로운 일을 행한다.
즉 믿음은 예수와 가장 깊은 관계를 맺어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본문대로 말하면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변하는 것이다.
전에는 죄에 대해 살아있어,
죄를 역동적으로 지으면서 죄에게 순종하는 죄의 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의에 대해 살아나서,
의를 역동적으로 행하면서 의에게 순종하는 의의 종이다.
주인이 바뀐 것이다.
나의 주인이 바뀌었다.
전에는 죄가 내 주인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시다.
전에는 죄가 시키는 일을 잘도 순종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신실한 일꾼이다.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것이 더 기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그 내용이다.
아,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하듯이 나는 “육신이 연약하므로”
아직 이렇게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
예수께서 마지막 기도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제자들을 안타까이 보시면서 하신 말씀대로
마음은 원해도 육신이 약하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나는 마음도 역시 약하다.
나는 마음으로는 의의 종이 되려는데 몸이 이전의 습관을 따라 죄는 짓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 마음이 여전히 죄를 좋아하고 탐심이 마음에 있다.
내게는 몸보다 마음이 더 문제다!

죄의 종은 죄를 열매로 맺고,
의의 종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는다.
나의 마음의 연약함을 더욱 하나님께 의지하여 고쳐가며,
거룩함을 더욱 사모하고 의의 종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