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1-14,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고)

사람들 사이에 서로의 결속을 과시하는 최대한의 말은
‘함께 죽기까지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거의 과장된 수사학이요
실제 통용될 수 있는 말은 ‘동고동락’ 정도일 것이다.
누구와 함께 죽는다, 혹은 누가 죽으면 그를 따라 같이 죽는다,
이런 말은 실제로 행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성도는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므로
감히 생명이 내 소관인 것처럼 결코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다.
그래서 고된 일이나 즐거운 일을 함께 하는 것,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며 바람직한 인간관계다.
사도 바울도 바로 그렇게 말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이것을 넘어서는 말과 행동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동반자로 강조한다.
이 본문에 죽음과 삶에 관한 단어가 23회 이상이나 나온다.
(죽은, 죽으심, 장사, 살리심, 부활, 죽어, 죽었으면, 살 줄, 죽지, 사망 ···)
오늘 말씀은 온통 죽음과 삶에 관한 말씀이다.
요약하면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고’라 할 수 있다.

예수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목숨까지 바치는 의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특히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예수와 어떻게 연합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그와 함께 죽는 것이다.
특히 세례를 받을 때 그것을 재현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다는 것은 우리보다 먼저 죽으신 예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죄가 없는 분이 우리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죽으신 죽음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 자리에 같이 가는 것이다.
나와 무관하게 예수가 죽으신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죽을 그 사건을 예수가 당하셨다.
그러면 예수께서 나를 위해, 대신해서 죽으셨으므로
사실 나는 이제 죽을 필요가 없는 존재다.
그렇다.
예수가 죽은 것이 부족해서 내가 따라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을 말한다.
나는 죄에 대해 죽은 자이므로 죄와 무관한 자다.
죄가 더 이상 내게 아무 영향을 미칠 수 없다.
나는 죄에 대해 죽었다.
죄는 누구든 공격하려고 호시탐탐 엿보고 있지만
나는 죄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
나는 죄의 사냥감이 더 이상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이요, 죄에 대해 죽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사흘 뒤에 부활하셨다.
죽음을 죽이시고 생명으로 이기신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을 때 나는 예수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다.
나는 예수의 부활에 동참한다.
그것은 죄로 인해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뜻하면서,
또한 내가 이제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죽은 것이 죄와 무관한 것과 똑같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는 자는 하나님과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전에 하나님과 무관하고 죄와만 관계가 있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듣지도 않았고,
죄만 밝히고 죄를 즐거워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한다.
나는 죄와 무관하고 하나님과만 유효한 관계가 있다.

이것은 예수를 믿을 때 주께서 해주시는 은혜다.
내가 예수와 함께 죽으면서 죄에 대하여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나면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난다.
그것은 이제는 내가 죄짓지 않는 존재요 하나님의 일만 하는 자라는 사실은 아니다.
나의 현실은 그와 같지 않다.
나는 여전히 죄의 유혹에 넘어가고 죄와 관계가 있다.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사는 시간과 부분이 참으로 많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하신 일은
나를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살리신 사건이다.
그것을 예수께서 행하셨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순종으로 누리고 있지 못하다.
나는 죄에 대해 죽은 자인데 여전히 이것이 문제가 된다.
나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인데 여전히 이것이 어려운 문제다.
하나님이 이루신 그 엄청난, 귀한 일을 내가 이루지(따르지) 못하는 것이다.
나의 현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실에 못 미친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실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인데 내가 어디를 기웃거리겠는가!
이 분명한 사실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