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2:1-21, 중심을 잡았다가 잃다니)

요아스는 남유다의 왕들 가운데 선과 악, 의와 불의의 양극단을 오갔던 왕이다.
그가 왕이 된 과정은 매우 특별한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한 것이었다.
그는 외할머니에 의해 죽을 위기에서 살아남아 6년을 숨겨 있다가
일곱 살에 왕으로 즉위했다.
그 과정에 제사장 여호야다의 역할이 아주 컸다.

그는 여호야다의 교훈 아래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들을 구분하는 아주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는가 아닌가.
특히 그는 성전을 보수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그것은 곧 중심을 바로 잡는 일이었다.

북이스라엘의 개혁자 예후의 문제는 그것이었다.
바알 숭배는 척결했지만
북이스라엘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던 벧엘과 단의 금송아지를 없애지 않은 것이다.
바알이든 아세라든 이방 신들을 멸절하는 것과 함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섬기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비유하신 것에도 명확히 나타난다.
어떤 사람이 집안을 깨끗이 청소했지만
귀신들이 들어와 전보다 더 못한 상황으로 된 비극적인 예다.
청소는 쓰레기를 비우는 작업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집안을 주인의 뜻대로 배치하는 것이다.
청소는 곧 빈집을 만드는 것이고 그 집에 거짓 주인이 들어와 못된 짓을 하면
그 집은 청소 이전보다 더 나쁜 상태로 된다.
예후는 바알은 제거했지만 하나님을 북이스라엘의 중심으로 모시는 일을 하지 못했다.
북이스라엘의 중심에는 버젓이 금송아지가 있었다.

요아스는 성전의 보수를 통해 중심 잡는 일을 잘 했다.
본질을 정확히 안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끝까지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끝은 인생의 끝, 즉 죽을 때까지가 아니라
여호야다가 살아있는 동안이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여호야다는 130세가 되도록 장수했지만 그가 죽었을 때 요아스는 아직 젊었다.
그는 살 날이 더 많이 남았다.
즉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중심으로 삼고 유다를 개혁할 날의 끝이 아직 많이 남은 자였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자 그 끝을 너무 앞당겼다.
그는 거기까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했다.
그는 살 날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여호야다의 죽음을 자신이 믿음을 지킬 끝으로 설정한 것이다.
아,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역대하의 기록에 의하면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유다 방백들의 미혹으로 성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을 섬긴다.
그는 방백들의 말에 의해 중심을 버렸다.
그러니 예수님의 비유처럼 바로 그 자리에 가짜 주인이 들어온 셈이다.
결국 그는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않고 더욱 잘못 된 길로 가다가
아람 왕에게 모든 성물과 보물을 빼앗기고
자신의 신복들에 의한 반역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요아스는 용케 중심을 잡았다가 결국 중심을 잃은 자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러기가 매우 쉽다.
그러니 얼마나 깨어있고 조심하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평생 중심을 잡아나가야 하는가.
중심을 잃으면 다른 것이 중심 행세를 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중심이시다.
내 중심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은혜와 복을 늘 사모하며
결코 무엇에도 중심의 자리를 내줄 수 없다.
방심하고 교만하면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