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1:1-21, 일곱째 해에)

아달랴는 아합의 딸로서 남유다의 왕 여호람과 결혼하여 아하시야를 낳았다.
여호람이 죽자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지만 재위 1년만에 예후에게 죽임을 당하자
아달랴가 자기 손자들을 죽였다.

아달랴는 예후의 혁명 와중에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예후는 “아합의 온 집”, 특히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을 다 죽임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단행했다.
그 명단에는 아합의 외손주인 아하시야도 포함된다.
그러나 아합의 딸이며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는 처형을 면했다.
그녀는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의 범위에 들지 않아서일까?
글자 그대로 적용하면 외손자는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에 속하고,
딸은 그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아달랴는 목숨을 부지했다.
그렇다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 몰아닥친 아합 일족의 처형을 보고
아달랴는 무엇을 생각했어야 했을까?
예후가 그를 살린 것을 보면 그는 심판의 명단에 들지 않는 것이며
이 피바람 속에 근신하고 회개하며 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 기회를 자신이 왕노릇 할 정치적 기회로 보았다.
아들이 죽자 아들의 아들들, 즉 손자들을 죽여 정통 왕위 계승의 길을 차단하고
결국 왕에게 가장 가까운 자신이 통치를 할 생각이었다.
이 잔인한 음모는 성공했다.

그러나 “일곱째 해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그가 6년 전에 한 일은 완벽하지 못했다.
남유다의 왕위를 이을 적통을 하나님께서 남겨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예후를 통해 북이스라엘의 왕권이 교체되게 하셨지만
남유다의 경우는 아하시야 왕에 대한 심판으로만 끝나고
왕조가 바뀌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즉 남유다는 다윗의 혈통이 계속 왕권을 이어갈 것이다.
아달랴는 그 적통에 속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적통을 남겨놓으셨다.
아달랴, 그가 겨우 목숨을 부지하여 회개하며 살아야 할 그가
감히 하나님의 뜻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놓으려 하니
그것이 성공할 수 있겠는가!

아하시야의 아들들, 즉 아달랴의 손자들이 변을 당할 때
한 살짜리 요아스가 특별히 보호되어 성전에서 몰래 숨겨져 6년을 자랐다.
마치 모세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과 흡사하다.
요아스는 6년이 지나도 여전히 어리지만
하나님은 그를 통해 남유다를 개혁할 때를 무르익게 하셨다.
어린 왕이지만 그 주위에 충분히 준비된 자들을 두루 배치시킨 것이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있었다.
그보다 먼저 유모 여호세바가 있었다.
여호야다의 명령을 수행할 백부장들이 있었다.
드디어 “일곱째 해에” 일곱 살, 어린 왕의 머리에 얹을 왕관이 있었고,
─아달랴는 왕관도 없이 6년 동안 왕 행세를 한 것이 분명하다─
율법책이 있었고 그의 머리에 부을 기름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기다려온 “온 백성”의 즐거움이 있었다!
아달랴와 그의 심복인 바알의 제사장 빼고는 모든 백성이 이 순간을 기다렸다.
이 엄청난 계획은 이들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6년 동안 역사하셨다!
남유다의 통치자는 아달랴가 아니었다.
그는 얼마든지 하나님의 콧김에 사라질 허깨비였다.
역사가 그러하다.
자기가 왕인 것 같고, 권세를 쥔 것 같지만
그만 모르는 일이 결국 일어난다.
하나님은 그를 배제하고 역사를 이끄신다.
이 허깨비는 자신이 왕인 줄 알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6년 동안 나라를 통치한 줄 알았겠지만
그에 의해 통치된 백성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새 왕이 자라는 기간 동안 백성들이 기다렸을 뿐이다.
하나님이 손을 쓰시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아달랴는 자신이 역사의 주체인 줄 알았지만
그는 역사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의 콧김에 그냥 날아갈 허깨비에 불과하다.

6년이면 사람에게 충분히 긴 기간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시요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그것은 촌음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냥 사라질 안개다.
아달랴는 그렇게 사라진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보는 자는
지금의 역사를 얼마든지 상대화한다.
진실로 두려워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지 사람의 역사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