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0:1-17, 아합에게 속한 자의 진멸)

예후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것은
“아합의 집을 치라”는 사명을 위해서였다.
그러면 ‘아합의 집’은 누구까지를 말하는가?
예후가 엘리사의 제자를 통해 기름 부음을 받을 때 들었던 말씀에 명시된 범위는
“이세벨”, “아합의 온 집”,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다.

상식적으로 아합의 아들들이 당연히 그에 속할 것이고,
또한 사위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과 남유다의 왕 아하시야도 죽임을 당한다.
아합의 나머지 아들들, 칠십 명의 남자들도 그에 해당하는 것은 지당하다.
이들을 예후는 하나씩, 또는 집단적으로 죽여나갔다.

여기에 더하여 예후는 아합의 “귀족들과 신뢰 받는 자들과 제사장들을” 죽였다.
이들은 “아합의 집”에 속하는 친족들은 아니어도
종교적으로 이스라엘을 우상의 길로 이끈 주도자들이므로
영적 개혁의 의미에서 처형 목록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제사장들을 처형한 것과 같다.

그리고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는데,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 42명도 이들 모두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
이들은 엄밀히 말하여서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하시야는 아합의 사위이지만,
그 형제들은 사돈일 뿐 혈족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과연 이들까지 죽이라고 한 것일까?

예후는 사람들을 죽여가면서 자의식이 점점 더 커져 가고 있다.
그는 “여호와를 위한 나의 열심을 보라”고 하였다.
이것은 교만이요, 사명에서 이탈되는 모습인가?
그에 대해서는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
왜냐하면 유다 왕 아하시야의 형제들을 죽인 것을
성경은 “거기에 남아 있는 바 아합에게 속한 자들을 죽여 진멸하였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이르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고 언급한다.
즉 성경은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죽음도
하나님께서 미리 하신 말씀의 시행 및 성취로 평가한다.
그렇다면 처형의 범위로 예후의 잔인성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합의 집을 심판하는 과정에서
예후가 마음이 교만해지거나 영적 권위의식에 빠지거나,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보다 자신의 보복이나 사람을 자기 권세로 죽이는 행위에
매혹을 느낄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그가 결국 28년의 통치 동안에 바알을 물리치는 일은 잘 했지만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계속 섬겼던 우상숭배 행위로서 그는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고,
그의 소명과 사명이 끝까지 유지되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예후에 대한 평가보다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로써 “아합의 온 집”의 심판, 즉 “진멸”에 대한 교훈이다.
아합이 이세벨과 함께 하나님보다 더 높은 것처럼 권세를 휘둘렀고,
그의 아들들이 돌아가며 왕노릇하고
이세벨은 왕비에서 두 왕의 어머니로서 여전히 권세자가 되었지만
그 집안이 완전히 심판을 받아 없어진다.
하나님의 공의는 얼마나 엄정한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가!
이것을 생각하면 내가 죄를 더욱 멀리 하고 늘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그저 겸손하고 감사하게 나아갈 뿐인 것을 더욱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