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9:27-37, 아합 집의 심판)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 예후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아합의 집을 치라”는 것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세벨”과 “아합의 온 집”의 “멸망”과
“이스라엘 중에 ···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의 “멸절”을 명하셨다.
이 범위는 꽤 넓다.

우선 아합의 아들이며 북이스라엘의 왕인 요람이
예후가 쏜 화살에 의해 염통이 꿰뚫려 즉사했다.
그 다음에는 유다의 왕인 아하시야가 도망 중에 죽임을 당한다.
아하시야도 “아합의 온 집”과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에 속하는가?
그렇다.
그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가 낳은 아들이다.
예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시행했다.

그리고 이세벨 차례다.
이세벨은 직접 예후의 손에 죽지 않았다.
이세벨은 자신의 높은 누각에서 마지막 힘을 과시하고 있었다.
예후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때에 맞춰 화장을 하여 자신을 높이며 상대적으로 예후를 무시한다.
그리고 예후가 무엇을 행했는지도 안다.
자신의 아들인 요람 왕의 죽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힘이 이렇게 기울고 있는데도 그는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의 몰락을 최대한 지연시킬 최측근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자신을 죽이러 온 예후는 누각 아래에 있고,
자기는 높은 누각의 방에 측근들에 둘려 있다.
최소한의 방어막이 구축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고 있는 예후는
자신이 누각으로 올라가 이세벨의 보호세력들을 처치하고 그녀를 죽일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그는 단지 명령했다.
그는 아합 집의 심판이 무엇보다 이세벨의 처형인 것을 알았다.
그런데 이 반역의 거사 중에 이세벨이 의지하는 최측근 호위병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예후가 어떤 작전을 펴서라도 이세벨을 처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예후는 이세벨을 죽이는 일의 심각한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지연작전을 펴거나 잔꾀를 쓰지 않는다.
단도직입적이다.
그는 바로 이세벨이 마지막 의지하고 있는 최측근의 사람들,
내시와 경호원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명령이었고 작전의 시달이었다.
그 순간 이세벨 주위의 측근들은 이세벨의 보호자가 아니라
예후의 명령 집행자였다.
예후는 하나님의 심판이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세벨의 발악에 주춤하여 또 다른 작전을 짜기 위해 시간을 끌 일이 없었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명령, 곧 하나님의 심판을 시행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권위로서 누구에게든 명령할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예후는 그 명령의 집행에서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그대로 시행하면 된다.
그리하여 예후의 명령에 따라 이세벨의 최측근들이 그녀를 창 아래로 집어 던진다.
그녀의 몸이 어떻게 분해되고 처리되었는지는 하나님이 미리 말씀하신 대로 되었다.
이로써 예후의 행동이 하나님의 명령의 시행인 것이 명백해졌다.

이것은 또한 어느 시대든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성도들의 자세에 모범이 된다.
세상 심판의 도구로서든, 세상 구원의 도구로서든
성도는 세상을 행해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다.
이것이 자기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므로
세상의 무시나 발악에 대해 놀라 위축될 일도 없다.
반면에 이 모든 일을 자기 능력의 과시의 기회로 삼고
자신을 최대로 높이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오직 겸손함으로,
그러나 담대하게 시행한다.
오늘날 모든 성도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사명,
전도에서 나는 얼마나 그러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