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3:31-24:7, 요시야의 두 아들 모두)

요시야는 남유다 왕국의 최대 영적 개혁을 이루었다.
그것은 어떤 개혁 시도보다 전체적이었고,
무엇보다 말씀, 곧 언약 중심적이었다.
그는 어린 나이(8세)에 즉위하여 31년을 통치하고 숨을 거뒀다.

개혁자의 아들은 역시 개혁의 길을 이어갔을까?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23세에 왕이 되었다.
그는 3개월, 즉 남유다의 역사에서는 최단 기간만 재위하였는데,
그 짧은 기간의 평가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는 책망이다.

그 다음은 엘리아김(여호야김).
그도 역시 요아스의 아들이요,
여호아하스와 똑같이 악한 왕으로 평가를 받는다.
즉 개혁자 요아스의 두 아들이 왕위를 이었는데
둘 다 아버지의 영적 개혁을 잇기는커녕
오히려 “조상들이 행한 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요시야 왕의 영적 개혁은 결국 당대의 사건으로 끝난 것이다.

여호야김은 11년을 통치하며
그의 형제 여호아하스가 저지른 악을 상쇄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을 가진 셈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개혁을 충분히 보고 기억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형제가 행한 일과 그에게 일어난 일을 보았으므로
어떤 길을 따를 것인가를 판단하기가 참으로 쉬었다.
아버지와 같이 영적 개혁의 길로 갈 것인가,
형제처럼 악의 길로 따를 것인가?

그리하여 여호아하스가 애굽으로 끌려간 것과 아주 흡사하게,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을 3년이나 섬겼다.
그것은 남유다의 멸망의 정확한 전조였다.
이 모든 것이 요시야의 두 아들 때에 일어났다.
아버지의 개혁은 그 아들들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망쳐질 수 있다.
요시야 이후에 유다는 국제적으로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데,
유다의 왕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강대국들의 세력 사이에서
나라의 운명을 도박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자신이 왕으로서 역사를 다스리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통치가 아니라 다른 나라를 섬기는 종에 불과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정체성을 상실할 때 나타나는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