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22;1-20, 요시야 왕의 영적 개혁)

요시야 왕은 어린 나이(8세)에 즉위하였음에도
유다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영적 개혁자였다.
그는 다윗 이후의 왕들 가운데
히스기야와 더불어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였다고 평가를 받은 단 두 사람에 속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다른 왕에게서는 볼 수 없는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던 왕이다.

그의 개혁은 성전의 수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것은 단지 건축행위로 ─우리나라 교회가 오랫동안 아주 중요시해왔던─
끝나지 않았다.
성전 수리는 성전 안에 보관되어 있던 “율법책을 발견”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은 아마도 유다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개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씀이 없는 개혁은 영적 쇄신이 아니다.

요시야 왕은 그 말씀을 듣자마자 “옷을 찢으”며 하나님께 통회했다.
그는 말씀을 듣고 즉각 그 뜻을 이해한 것이다.
그냥 오랜만의 기가 막힌 사건에 놀란 것이 아니다.
그는 성경 말씀의 내용에 반응했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님께 물었다.
그가 이미 옷을 찢고 통곡할 정도로 알아들을 말씀이었지만
그 의미를 하나님께 직접 듣기를 원했다.
영적 개혁은 곧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어떤 뜻이라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를 물어 아는 것이다.
그는 “여호와께 물으라”고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여기에 여러 신하들의 이름이 나온다.
왕이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기 위해 선지자에게 보낸 신하들의 명단이다.
힐기야(제사장), 아히감, 악볼, 사반(서기관), 아사야(왕의 시종).
한 사람의 사자가 아니다.
왕은 다섯 명을 보냈다.
이것은 우선 왕이 이 일을 얼마나 중시했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요식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너무도 중요해서 한 사람이 할 일이 아니었다.
중요한 신하들 다섯 명이 함께 가서 해야 할 일이다.
다섯 명은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한다.
한 명의 신하라면 그가 잘못 듣거나 잘못 옮길 수 있으며
그것도 다른 사람이 확인하기 어렵다.
다섯 명이면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전달하는 일이 가능하다.
그리고 여러 신하들이 이 일을 맡았다는 것은
요시야 주위에, 당시의 유다에 영적 개혁의 동역자가 그만큼 많았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개혁은 왕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동역일 때에 진정한 영적 개혁이다.
여선지자 훌다까지 여섯 명이 요시야의 개혁에 동역자였다.

하나님은 요시야가 읽은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이 반역하여 받게 될 저주임을 명시하셨다.
요시야가 그 맥락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도 옷을 찢으며 통곡하듯이
사실 그 뜻은 분명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신다.
요시야가 재발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진 것이 인정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요시야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그의 재위 기간에는 그러한 징벌이 임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큰 죄라도 회개하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신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께 이 말씀의 뜻을 물으러 온 개혁의 동역자들에게
글자 그대로의 저주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한 진실한 반응에 자비를 베푸시기까지 하신 것이다.

저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통회로 나아가면
그 순간은 하나님의 긍휼의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