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4:17-29, 두 번째 여로보암)

예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세우신 왕이다.
그가 북이스라엘 왕들 가운데 영적 개혁을 시도한 유일한 인물이지만
그것이 불완전하였기에 그 집안의 왕위는 그의 다음에 4대까지로 한정되었다.
하나님이 예후의 공과를 그렇게 판단하셨다.

예후 다음에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스가랴로 이어지고,
이 4대 후에 반역으로 예후 가문의 왕위는 끝난다.
오늘 본문의 여로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첫 왕과 이름이 같아 여로보암 2세라고 불린다.
여로보암은 ‘백성의 수가 많아진다’, ‘백성을 더하게 하소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스라엘 왕국이 솔로몬 이후로 남북의 왕조로 나뉠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 대한 징벌로 여로보암을 통해 북이스라엘을 세우셨다.
나라가 나뉘었으므로 사실상 인구와 국력은 감소된 것이지만,
남쪽의 두 지파에 비해 북쪽의 이스라엘은 열 지파이므로 인구가 더 많고 땅도 더 넓다.
그렇다면 여로보암의 이름은 이때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에 의해 세워졌음에도
결국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북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는 원조가 되었다.
이제 이후로 모든 왕들이 여로보암을 기준으로 판단 받는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한결같이 여로보암의 길로 간 자로 평가된다.
예후 가문의 여로보암, 즉 여로보암 2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고
북이스라엘의 초대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두 번째 여로보암도 첫 번째 여로보암과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로보암 2세를 내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의 재위 기간 동안에 땅이 넓어졌다.
그리하여 ‘백성의 수가 많아진다’는 그의 이름 뜻은 이루어졌다.

그것은 여로보암 2세의 공적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도 다른 왕과 똑같이 하나님을 멀리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남유다는 구원을 받았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은 북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은 은혜 베푸시는 것을 거두지 않으셨다.

아, 이 은혜는 오늘날도 동일하게
사람의 능력에 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것 아닌가.
그러므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가 다 스스로 의로운 자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구원받은 것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참으로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께서 거룩함으로 부르신 성도답게 살아야 할 것이지만,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누구도 판단할 수 없으며,
여로보암과 같은 자에게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내게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인 사람 판단하는 것,
이것이 중지되고 사라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