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3:14-25,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어제 말씀에서 북이스라엘의 왕 요아스는
그의 아버지 여호아하스에 이어 역시 ─사실은 “또”─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평가는 예후를 제외하고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들에게 해당하는 평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요아스의 다른 면이 나타난다.
그는 엘리사 선지자가 죽을 때 “눈물을 흘리며”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하고 통곡했다.
그는 말로라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내 아버지”라고 부름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셈이다.
엘리사는 숨을 거두면서까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는 자였다.
그가 요아스에게 남긴 사명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었다.

그것은 화살들을 손으로 집어 땅을 치는 것으로 형상화되었는데,
엘리사는 그것을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이라고 명하였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곧 하나님을 위한 구원이다.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한 구원이다.
즉 이스라엘이 잘 나서, 어떤 자격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이요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이다.

이것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 모든 성도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누구도 자기를 위해 구원받는 자가 없다.
누구도 자기로 인하여 구원받을 자가 없다.
구원받는 자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원받는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여호아하스와 똑같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죄의 길로 갔던 요아스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신다.
요아스는 더구나 여호아하스 때 빼앗긴 성읍을 아람에서 “다시 빼앗”았고 “회복하였”다.
그 다음 본문에 보면 요아스는 남유다의 아마샤와도 싸워 이긴다.
이 모든 것이 북이스라엘이, 요아스가 뛰어나서 얻은 구원과 회복이 아니었다.
모두 다 하나님을 위한 구원이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며,
그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이시다.
즉 왜 이스라엘이 구원받는가?
하나님을 위해서다.
왜 우리가 구원받는가?
하나님을 위해서다.
그런데 내가 기껏 구원받고서 하나님을 위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죄송한 일인가!
나를 위한 구원이 아니다.
하나님을 위한 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