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4:1-8, 전도자의 직무를 다하라)

전도는 때에 따른 전략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본성이며 하나님 믿는 이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구원받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전적으로 베푸셨지만
그 은혜는 회개와 믿음, 즉 인간의 인격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만일 하나님이 모든 인간의 구원을 하늘에서 선포하셔서
인간의 회개도 믿음도 어떤 반응도 없이 자동으로 구원받게 하신다면
전도는 필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구원을
하나님은 그에 맞게 인격적인 대화와 설득과 인정과 자발성으로써 행하신다.
그것이 곧 전도다.

세상은 아주 편하게
전도는 비인격적이요 전도하지 않는 것이 인격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아무 간여를 받지 않는 것을 인격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전제를 모르는 소치다.
하나님은 저희들끼리 잘 살고 있는 인간 세계에 나중에 나타나셔서
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하고 선포하시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좋았던 상태가 인간에 의해서 결딴나게 된 것을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는 은혜가 구원이다.
전도는 아무 문제 없는 인간에게 비인격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고 거기에 빠져 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한 사랑이요 배려다.
그러므로 전도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다.

오늘날은 특히 세상이 하나님을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전도는 이제 법으로도 금지시킬 개인에 대한 침해로 단정 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과 인간의 범죄의 사실과
그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다.
그리하여 전도는 때─고대이든지, 중세든지, 현대이든지─에 상관없이 영원한 진리다.
그리하여 전도는 때─사람이 전도해달라고 요청하든지, 친절하게 받아들이든지, 거부하든지, 적대적으로 박대하든지─에 상관없이 성도의 영원한 사명이다.

이 진리 앞에 나는 너무도 부족하다.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권능에 의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도를 나의 사회성과 설득력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는 그 은혜에 의해서 나오는 것인데
내가 세상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너무 부족하다.
하나님이 때에 관계없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전도로써 구원하시고자 하시는데
나는 너무 때에 의존하여 사랑하고 무관심하고 적대한다.
사람에 대한 관계가 때에 따라 다르다.

전도자의 직무에는 때가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바울 사도의 엄한 권고요 그의 모범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내가 세상 사람들의 생명을 정말로 사랑하면 때에 의존할 수 없다.
사실은 전도에는 유일한 ‘때’가 있는데
바로 내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이제는 내가 전도자의 순서가 되었다는 사실뿐이다.
내가 예수를 믿는 사실만이 유일한 구원의 때요,
그러므로 나는 언제나 전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