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6:15-23, 열린 눈, 어두운 눈)

아람 왕이 침실에서 하는 말이라도 엘리사에게 다 새어나간다면
엘리사를 체포하여 제거하면 될 거라는 생각은 일견 일리가 있다.
엘리사가 없으면 아람 진영의 작전은 누출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앞뒤가 맞지 않는 결론이요 대처다.
아람 왕의 어떤 생각도 다 알려진다면
엘리사를 체포하려는 계획도 이미 드러난 것이나 마찬가지요
아람 왕보다 먼저 엘리사가 방책을 준비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상황에서, 아니 어떤 경우에라도
먼저 행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람 왕이 엘리사를 죽이겠다고 작전을 짜기 전에,
그보다 먼저 엘리사가 아람 왕의 계획을 알고 방책을 세우기 전에,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아셨고 하나님께서 일을 이끄신다.
엘리사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수를 쓸 필요가 없었다.
사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람 왕의 생각을 미리 아는 초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다.
이 모든 것은 엘리사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르쳐주심으로써 된 일이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아람 왕이 자기를 체포하러 오는 것을 알지만,
그보다 더 하나님께서 아람 진영의 작전을 무효화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알았다.

엘리사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아람의 군대보다 더 강하고 많은 군사력을 동원할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군대의 통수권자가 아니다.
그는 소수의 병력이라도 배치할 권한이 없다.
그렇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군대가 아니라 아예 하늘의 군대를 동원하셨다.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다!
그리고 엘리사는 그것을 보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어떤 병력이 배치되어 있는가 하는 군사력의 차이다.
그리고 그다음에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을 아는가 모르는가의 여부다.
아무리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를 에워싸고 있어도 이것을 보지 못한다면
그는 두려워할 것이다.
그 반대로 수많은 군사를 파견한 아람 측이 하나님의 군대를 보지 못한다면
그들은 오판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태를 정확히 보는가 아닌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하여 엘리사는 병력의 지휘를 신경 쓴 것이 아니라
이 상황을 볼 수 있게, 또는 보지 못하게 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먼저 게하시의 “눈을 열어서”
아람 군대와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군대, 즉 산에 가득한 불말과 불병거를 보게 하였다.
그리고 아람 군대에게는 “눈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들이 어디를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하였다.
이런 지경에서 무슨 전쟁이 되겠는가!
눈이 있는 자와 눈이 없는 자,
눈이 열려 상황을 보는 자와 눈이 어두워(닫혀) 사태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자 사이에
무슨 전쟁이 속개될 수 있겠는가.
전쟁은 진행될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전쟁의 승패가 이미 끝난 것으로 간주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눈 뜬 자와 눈먼 자를 대결시키고
눈이 어두운 자들이 궤멸하게 함으로써 승패를 결정하지 않으셨다.
승패는 이미 끝났다.
그러므로 이 패자들을 다 죽여 없애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오히려 이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그들 조국으로 잘 돌려보내라고 명령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아람 군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한 것이다.

눈이 열려 보는 자는 이미 이긴 자다.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는 자는 이미 진 자다.
하나님이 성령의 감화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와 나의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회복을 보게 하셨다.
나는 눈이 열린 자요 보는 자다.
그런데도 마치 하나님의 이러한 은혜를 받지 못한 자처럼
옷이나 먹을 것이나 집이나 보고 그것으로 승패를 구분하고
그에 따라 자고하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되겠는가.
열린 눈으로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쓸데없는 것만 여전히 보고 있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