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3:1-9,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시편의 주제는 ‘하나님 찬양’이고 찬양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어디서나 높으신 분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렇게 알고 있었다.
신약에서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에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낮아지신 하나님,
더욱이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속량하실 때 참으로 낮아지신 하나님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즉 구약이요 시편의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을 “스스로 낮추”셨다고 말한다!
바로 앞 구절에서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다고 찬양한다.
그러나 그 문장은 “···앉으셨으나”로 끝나고
그 다음 문장이 “스스로 낮추사”로 이어진다.
아, 하나님께서 낮아지신 것은 신약의 ‘고안’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삼위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세상의 구원을 계획하신 것은
구약성경의 시대가 끝나고 나서 비로소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계획 속에
이미 “스스로 낮추”시는 하나님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원이라는 거대 계획을 위해서만 어쩔 수 없이 낮아지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살피시”기 위해 스스로 낮추셨다.
하나님이 천지를 살피시기 위해 땅에 직접 오신 것이
예수께서 베들레헴에 아기로 탄생하실 때만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을 살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그때 아브라함도 만나셨다.
심지어는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해 애달프게 의인 수를 ‘타협’할 때
하나님은 끝까지 다 들어주셨다.

하나님이 천지를 살피러 스스로 낮추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은 영원히 하늘 보좌에 앉아계시고
천사들을 시켜 저 아래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알아보게 하시고 보고만 받는 분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처지를 살피시며, 하나님께서 직접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신다.
이런 것을 전담하는 대리자들과 대표들을 하나님은 따로 고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직접 하신다.
즉 하나님이 직접 살피시고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신다.

아, 그러하다면 천지 가운데 있는 나를 또한 살피시기 위해 하나님은 얼마나 내게로 오셨겠는가.
나로 인해, 나를 위해 얼마나 많이, 자주 스스로 낮추신 것인가!
하나님이 나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나의 죄악을 다 샅샅이 아신다.
이것은 내가 하나님을 피해 어디로도 숨을 수 없고
오로지 두려운 마음으로 겸손하게 모든 죄를 이실직고할 것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나를 살펴보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신 것이니
얼마나 황송한 것인가!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살피시기 위해 낮아지셨다.
나에 대한 배려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하나님께 내가 그렇게 중요한 존재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리고 이것은 나 또한 다른 사람을 살피기 위해 얼마나 낮아져야 하는가를 말한다.
나는 과연 누군가를 살펴보는가?
그러기 위해 스스로 낮추는가?
누가 어려움 가운데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가 내게 어떤 도움을 청할까봐 오히려 피하고 그의 근접을 차단하지는 않는가?
아마 그와 접촉하지 않기 위해 낮은 데로 숨기는 해도
그를 살펴보기 위해 낮아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나님의 낮아지심은 나에게 낮아지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내가 이것을 안 들으려고 귀를 막으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