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1:1-10,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서)

이 말씀은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을 연상시킨다.
그는 “악인들”, “죄인들”, “오만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
거기서는 복 있는 사람이 속하지 않은 대상들을 말했다면,
여기서는 그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강조한다.
그는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 있다.

어디에 있는가, 어떤 사람들 가운데 있는가,
결국 누구에게 속하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은 소속을 말하며 결국은 본질을 규정한다.
악인들과 죄인들과 오만한 자들과 함께 있는 자는
그 자신이 악인이며 죄인이며 오만한 자다.
그러나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 있다면
그는 역시 정직한 자다.
내가 누구인가는 내가 누구와 함께 있는가로 판명된다.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 있는 자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을 즐거워하고 기리며,
하나님의 기적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며,
하나님을 영원히 계속 찬양한다.
이것은 역으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하는 자는 정직한 자들에게 속한 자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와 함께 하는가, 누구에게 속했는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는가, 이것이 늘 나를 살펴보고 판단하는 기준이다.

오늘 나는 누구를 만나는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는가?
무엇보다 내가 늘 있는 곳, 우리 가정이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이 되어야 한다.
내가 아내와 함께 하나님과 사람들과 서로에게 참으로 정직한 자가 되어야겠고,
또한 정직한 자들이 하는 일들을 하고 나누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늘, 화요일,
나는 다섯 명의 대학생들을 만나 기독교 세계관 성경공부를 한다.
아, 하나님!
이 모임이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이 되게 하소서.
여기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오늘의 주제는 ‘창조’다!─을 즐거워하고 기리며,
하나님이 행하신 창조의 “기적”을 “기억”하며 찬양하고,
그리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감사한 일이 있게 하소서.
오늘날 대학과 학문을 지배하는,
하나님 없이 세상을 설명하는 자연주의의 논리적 허점을 명확히 드러내며
하나님 창조의 놀라움과 위대함을 기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