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0:1-20, 하나님의 전쟁)

본문은 특별히 이스라엘의 전쟁 교범, 또는 전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매우 특이하다.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출정하시는 싸움이다.
이스라엘은 구경꾼이 아니라 나가 싸울 군대이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다.

또한 전쟁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의 사정이 고려된다.
전쟁은 국가 비상사태이며 개인적인 생활이 뒤로 미뤄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스라엘은 집의 건축이나 포도원 경작이나 약혼이나 심지어는 마음이 허약한 경우라도
특별한 배려로 병역이 면제된다.
이런 나라가 있다니!
앞의 세 가지 경우는 개인의 일상생활을 최대한 배려한 것이고,
마지막 예는 다른 사람에 끼칠 부정적인 영향력 때문이다.
즉 개인 및 공동체가 고려된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전쟁은 화평을 먼저 선언하고 응할 경우 평화적인 주종관계가 수립되며,
응하지 않을 경우 전쟁으로 정복한다.
이 과정에서 적의 군사력을 와해하는 것에만 주력하여 남자들만 섬멸의 대상이 되고
여자와 유아 및 심지어는 생태계의 보존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은 소위 인도주의가 있고 관용이나 국제법이라는 것을 내세워
말로는 신사적인 전쟁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점점 더 가공할 비극적인 만행이 전쟁 중에 벌어진다.
그에 비하면 3500년 전의 이스라엘의 전쟁 윤리는 정말 남다르다.

무엇보다 이 규범이 강조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전쟁이 사람들 사이의 군사력 경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어떤 민족과 어떤 나라와 싸우실 것이다.
이게 상대가 되겠는가?
그러므로 전쟁은 두려워할 것이 없고 승리가 완전하게 보장되어 있다.
하나님과 사람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전쟁은 매우 여유가 있으며 정당하다.
전시인데도 평시에 각 개인이 직면하는 일상생활을 배려하는 이유는
이 전쟁이 그러한 병력까지 다 긁어모아 인간의 총력을 기울여 싸워야 할,
즉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사람이 해내야 할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므로 전쟁은 아주 여유롭다.
또한 이스라엘은 승리를 위해 조금도 비열할 필요가 없다.
너무도 당당하다.
게릴라전이나 위장 전술이나 적을 속이는 전략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이 싸우시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별도의 술책을 마련할 필요가 없다.

구약의 이러한 전쟁 규범은
예수께서 성도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삶의 방식과 그대로 연결된다.
성도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산다.
조금도 위축되거나 비열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
성도는 적대적인 세상에서도 여유 있게 산다.
이것은 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상을 충분히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여유롭다는 뜻이다.
성도의 관심은 생태적이며 인도적이며 전 우주적이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시며 위하여 싸우시고 구원하시는 전쟁’이다.
아, 그런데 나에게 이러한 담대함과 당당함과 여유가 참 부족하다.
이것을 위해 특별히 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