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4:1-12, 모세의 장사와 애곡)

모세가 마지막 한 일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축복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고 나서 그는 한 가지 일을 더 했다.
사실은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느보산에 올랐다.
해발 7~800미터(북한산 정도, 그러나 사해의 해수면으로부터는 약 1200미터)의 꽤 높은 산이다.
120세의 나이였지만 그는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다.
그 산은 가나안이 아주 잘 조망되는 곳이었다.
거기서 모세는 가나안 땅을 다 둘러보고 숨을 거두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신 지도자의 사명을 끝까지 충실하게 감당했다.
죽는 순간에도 백성들을 축복하고 산 위에 올라 미래를 조망하였으며,
눈앞에 보이는 가나안을 소망으로 품되 하나님이 주신 한계 이상의 욕심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명령에 순종했다.

그리고 지도자로서의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바로 거기서 그는 죽었다.
그는 그가 마지막 있던 곳, 마지막으로 올랐던 느보산의 골짜기에 장사되었다.
그의 장례는 예를 갖춘 위엄 있는 장례식이었을 것이다.
백성들은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했다.
30일 장이면 오늘날의 모습에 비하면 매우 긴 기간의 장례다.
그러나 죽은 몸이 썩지 않도록 미라를 만들고 마치 영원한 집이나 되듯이 피라미드를 건축하였던
강대국들의 관례에 비하면 결코 웅대한 장례식이 아니었다.

30일 간의 애곡에 이은 장사(매장).
장례식은 죽어서 애곡하고 매장되는 순간까지다.
강대국들의 왕들은 이 장례를 최대한으로 화려하게 떠벌였음에도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후가 더욱 화려했다고 할 수 있다.
방부제로 처리되어 영원히 존재하게 하고 거대한 석조건물로 현대까지 남게 하였으니
그들의 장례식은 죽은 뒤로도 약 5000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모세의 장례는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이 짧은 30일로 끝났다.
그는 30일간 백성들의 애곡과 장사(매장)로 장례식을 다 마친 것이다.
그 이후로 그는 전혀 기려지지 않았다.
그는 무덤으로도 남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땅속에 장사되었지만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었다.
그의 죽은 날을 기념하여 몇 주기 추도식, 추모식도 열리지 않았다.
모세가 완전히 망각되고 기억과 역사에서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모세는 성경을 통해 이스라엘뿐 아니라 오늘날 전 세계의 사람이 다 아는 이름이 되었다.
특히 예수를 믿는 성도들은 그의 사역을 잘 안다.
그는 참으로 우리 모두가 모범으로 삼을 지도자요 선배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이끈 백성들에 의해 애곡은 되었지만 숭배되지는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이 집중되는 기억을 형성하지 않았다.
그는 그 자신이 기념되는 문화적 기억장치를 만들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만을 위해 사역했고 그것을 마치자 깨끗이 떠났다.
그는 지저분하게 세상에 이것저것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몸(시신)도 그 일부(사리)도 무덤도 유적지도 기념비도 남기지 않았다.
모든 세세한 장소를 기입한 성경이
모세의 죽음과 장례를 생중계 하듯 하였으면서도 “그의 묻힌 곳”을 알지 못하며 조사하지도 않고 기록하지도 않았다.
성경은 무엇을 기록할지 무엇을 빼야 할지 정확히 보여준다.

애곡은 중요하지만 숭배는 합당하지 않다.
모세는 그것을 정확히 알았고 백성들도 그 뜻에 제대로 순종했다.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집중했다.
모세는 성도의 죽음과 애도와 추모에 대해 아주 중요한 모범을 남겼다.
그는 아주 특별한 지도자로서 얼마든지 우상화되고 숭배되고 추앙될 수 있었다.
그것을 마다한 지도자가 역사에 없다.
그러나 모세의 죽음은 참으로 깨끗하다.
맺고 끊는 것이 아주 정확하다.
감사도 기억도 기념도 축복도 모두 하나님 중심이다.
전반적으로 하나님을 중심하더라도 어떻게 하든지 자신을 또 하나의 중심으로 삼게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야심 아닌가.
누구나 결코 주변에 놓이기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중심은 오로지 하나님이요, 우리 모두는 그 주변에 있는 자다.
그러므로 잘 사라져야 한다.
잘 사라지게 해야 한다.
애곡하되 인간을 높이는 것에 아주 민감하게 거부해야 한다.
모세는 무덤을 남기지 않았고 예수님은 아예 시신마저 남기지 않았다.
그런 것은 남겨서 기릴만한 것에 속하지 않는다.
성도는 모세가 품고 남긴 것을 따르는 자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과
현재 거룩하게 구별되어 사는 성도로서의 삶이다.
성도의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