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3:18-29,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모세의 축복은 단지 듣기 좋을 입발림이 아니다.
죽어서도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결국은 자기 관리의 전략으로서 마지막 선심을 쓰는 것이 아니다.
모세는 지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며
그들 각 지파에게 어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으며, 개성이 무엇인지,
무슨 소망을 품어야 할지를 잘 관찰했다.
마지막 축복은 갑자기 받은 계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모세가 품어온 기도 제목일 것이다.

이 축복은 각 지파들을 단위로 하여 하나하나씩 돌아가며 선포된다.
그러나 이것은 각 지파의 개별적 축복이면서
사실은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를 향한 소망과 약속과 목적의 부여다.
그리고 신명기 말씀이 그러하였듯이
모세의 열두 지파 축복은 앞으로 오고 오는 세대에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백성이 될 모든 성도를 위한 정체성의 제시다.

이 축복을 나도 받고 이루기 위해 꼭 열두 아들딸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모두 주님의 형제요 모친이요 가족이므로
지상의 모든 성도가 나와 함께 이 복을 누리고 이룰 공동체다.
우리 교회가 스불론이면 바로 옆 건물의 교회는 잇사갈이다.
그리고 스불론은 “밖으로 나감을 기뻐”할 것이며,
잇사갈은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할 것이다.
안과 밖에 우열과 서열이 없다.
사람들이 아주 잘 하는 것은 장소와 시간과 삶의 양식을 우열로 구분하는 이원론이다.
몸은 속되고 영혼은 거룩하다고 하고,
평일은 세상을 위하고 일요일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적대적인 구분을 해놓는다.
그러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서 이원론이란 없다.
밖으로 나가서도 기뻐할 것이며, 집안에 있을 때도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성도에게 밖과 안이, 어디가 더 거룩하고, 어디가 더 속된 구분은 없다.
애초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선하고 아름답고 거룩한 땅이요 하늘이요 몸이요 영혼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택한 뒤로
창조세계는 왜곡되고 변질되어 모든 영역과 부분이 얼룩지고 더럽고 어둡게 되었다.
하늘도 땅도 영혼도 몸도, 안도 밖도 모두가 죄의 장소와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속자가 오심으로
그 모든 것이 창조질서의 아름다움으로 회복되고 거듭날 것이다.
이제 성도에게 밖과 안은 하나님의 은혜로 기뻐하고 즐거워할 동일한 장소다.

이 복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내가 잘 되어서?
우리 교회가 잘 나가서?
아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이 모두 잘 되어서 이 복이 이루어진다.
잇사갈만 잘 되면 장막의 즐거움만 고집하는 셈이다.
모두 스불론이 되어 밖으로 나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반쪽만 아는 셈이다.
성도에게 안과 밖은 모두 하나님의 세상이며, 하나님을 위한 처소다.
성도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 축복의 말씀 앞에서 나의 편협함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하나님의 복은 나를 얼마나 넓고 넉넉하게 할 것인가!
내가 얼마나 바른 꿈을 품어야 하며 바르게 순종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