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6:1-19, 맏물의 역사적 신앙고백)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많은 점에서 새로운 상황을 만난다.
그냥 새 장소에 이주하게 되었다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다.
애굽에서 400년 이상을 머물며 거의 대부분의 기간을 노예로 지냈고,
출애굽 기적 후 40년을 광야에서 유랑한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며
남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이스라엘의 땅에서 농사를 짓는다.
더욱이 지난 40년과 비교하면
광야에서는 이동 중이었으므로 농사를 짓지 않았다.
하나님은 매일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다.
이제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자유농으로서 농사를 짓는다!
그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이스라엘은 해마다 세 번 큰 절기를 지킨다.
칠칠절은 첫 수확 후에 감사를 드리는 잔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매년 맞는 첫 수확이 아니라
정말 가나안에 들어가 처음으로 추수를 한 뒤에 드리는 감사에 관한 내용이다.
그야말로 앞으로 있을 “그 토지의 모든 소산의 맏물”이다.
그때 이스라엘은 그 “맏물”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다.
그것은 오랜 노예와 방황 뒤에 얻는 첫 수확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이 땅에서 얻게 될 모든 소산의 시작이다.
드디어 가나안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이다.
이것이 시작의 중요성이다.
처음 시작하면 그 다음이 이어진다.
만일 시작이 없다면 그 다음은 없다.
내가 첫돌을 맞았기에 이제 60이 되고,
내가 첫 강의를 했기에 지금 가르칠 수 있으며,
내가 어머니 뱃속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기에 지금 교인일 수 있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가, 또는 나의 외할아버지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에
나는 믿음의 다음 세대가 될 수 있었고,
내 아이에게 믿음을 전수할 수 있었다.
모든 시작이란 얼마나 중요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인가!

이스라엘은 이 “맏물”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기에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했다.
그것은 단지 한 해 농사의 수고의 결실이 아니다.
그것은 지난 400여 년의 고생과 그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의 결과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가나안 첫 세대는
그 첫 수확에 감격하여 지금까지 지내온 역사를 하나님 앞에 되뇐다.
그 믿음의 고백은 지난 5, 6개월의 파종기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 내려가기 전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조상”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나안에서의 모든 소산의 맏물은 그때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가나안의 수확의 역사는 하나님이 아람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애굽에서의 번성과 중노동의 고생과, 신음을 들으신 하나님의 역사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이르게 된 모든 과정을 망라한다.
그러므로 가나안에서 모든 소산의 맏물의 감사는
이 역사적 고백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식과 감사와 고백이 첫 세대의 첫 수확에만 적용되겠는가?
아니다.
매년 칠칠절의 첫 수확 때마다 이 역사적인 고백과 감사가 반복되어야 하며,
날마다 첫 아침을 맞을 때마다 거듭되어야 한다.
나의 하루와 모든 일상이 이 어마어마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그것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축약할 수 있겠는가,
생략할 수 있겠는가!
이 어마어마한 역사의 귀결로 오늘 내가 하루와 한 시간을 맞는데
이 모든 순간을 어찌 맥없이 낭비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