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4:10-22, 약자 앞, 곧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의 율법에서 약자들─가난한 자, 나그네, 고아, 과부 등─은 특별한 위치에 있다.
그것은 또 다른 역차별을 양산하는 모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율법은 재판에서 가난한 자라고 더 봐주지 말라고 한다.
약자이기 때문에 특권을 갖는 것은 없다.
단지 그들은 이미 많은 설움을 당하고 있으므로 더 배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다 있는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 자들이다.
돈이 없고, 가족이 없으며 해당 지역에서 쌓아온 기반이 없다.
그것들은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지켜주는 사회적 조건이다.
그것이 없으니 소외되고 푸대접을 받기 쉽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은 그들을 특별하게 배려하신다.

그들은 하루하루 겨우 사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전당물이 단 하루의 부담도 되지 않도록 해줘야 하며,
품삯은 그날 하루의 삶을 반드시 보장하게 해줘야 한다.
있는 자들에게는 전당물이나 지체된 품삯이 얼마 동안은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 있어도
약자들은 하루의 필요가 그날 채워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은 하루의 삶에 아주 민감하여 밤이 되기 전에 전당물을 돌려주면
고마워하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며,
그날의 품삯을 단 하루만 미뤄도 그것을 간절히 바라며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축복과 호소를 아주 귀하게 받아주신다.
아니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과 호소로 만들어주신다.
즉 약자가 고마운 마음으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 복을 줄 것이며,
억울한 일을 당하여 호소하면 하나님께서 바로 그 호소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그러니 약자들의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다.
왜냐하면 약자들의 말을 무시하는 것이 우리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나의 파괴적인 죄성은 나만 위하는 한도 내에서 사람들을 배려할
─사실은 강자들에게 굽씬거릴─ 뿐이다.
그런데 주님은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면 어디서나 있는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가 바로 주님 자신이라고 하셨다!
그들의 약함을 예수님은 “내가 주릴 때에 ··· 목마를 때에 ···”로 동일시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는 것이 곧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이스라엘은 사실 “지극히 작은 자”였다.
그 상태로 출발했다.
그들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자들이다.
그들의 이력서는 초라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많이 입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기억하고, 이전의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약자들을 배려해야 한다.

‘나는 전에 어떠했는가?’
‘나의 시작은 얼마나 초라했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내가 감히 누구에게 야박할 수 있겠는가!
아, 내 앞에 약자들이 있을 때 나는 바로 하나님 앞에 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