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3:19-24:9, 자기 이익의 추구에 대하여)

아마도 사람들이 ‘자기의 이익’을 생각할 때 가장 우선되는 부분은
금전과 관련하여서일 것이다.
특히 오늘날 경제제일주의 시대에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 없게 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돈을 빌려주고 시간이 지나 원금과 이자를 받는 것은 오늘날 지당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율법으로 금하셨다.
우선 그 대상이 구분된다.
형제, 즉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는 이자가 금지되며,
외국인과의 거래에서는 이자가 가능하다.
아마도 외국인과의 관계는 상업적인 거래일 것이고,
동포에게 빌려주는 것은 구제의 일일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투기를 목적으로 돈을 빌릴 상황은 아니었고
돈을 빌려야 할 사람이라면 특별한 재해로 인해 곡식이나 돈이 궁해서일 것이다.
그러면 그는 약자이며 이웃사랑의 대상이지 투기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는데 내가 나의 이익의 대상으로 여길 수 없다.
누구에 대해서든 성도는 자기 이익을 목적으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본문은 형제에게 꾸어주고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을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반드시 갚으라는 명령과 연결시킨다.
서원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해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면서
하나님께 무엇을 해드리겠다고 하는 일종의 맹세다.
물론 앞 부분의 조건 없이 오로지 헌신의 다짐으로만 하는 서원이면 더 좋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위해 서원을 허용하신다.
그때 대체로 우리의 긴급한 문제들의 해결을 하나님께 부탁(요구)하게 되는데
한 마디로 그것은 ‘자기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물론 기도제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나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긴급히 요청해놓고는
그것이 이루어지자 내가 하겠다고 했던 서약들을 잊는다면
나는 그야말로 나만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한 것이다.
하나님은 돈 관계에서도 자기 이익을 위하는 것이 우선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자기 이익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사실 서원은 나의 긴급한 필요를 채우기 위한 흥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헌신의 다짐이어야 한다.
그것도 함부로 하지 말하야 할 것은 자칫 말로만 하는 화려한 잔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려한 서원이 나를 얼마나 으스대게 할 것인가!
나는 나를 드러내며 자랑하는 데 얼마나 익숙한가!
말한 대로 살지 못하는 말이라면 그저 자기 과시를 위한 공치사가 될 것이다.
그런 술수로 하나님을 속이려 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나님은 지키지 못하는 서원보다 차라리 서원하지 않은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것을, 또는 저것을 서원하라고 요구하지 않으신다.
결국 서원은 인간의 열심인데,
그것이 자신의 필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자기 이익, 이것은 철저히 상대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