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15-31,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를 찾으면 만나리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모세가 ‘다시’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그것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하는 일밖에 안 된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를 위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는 자다.
자신이 목표가 되지 않고 하나님만이 목적이다.

만일 스스로 미혹되어 우상을 만들면
하나님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을 섬기”게 하실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 이외의 신을 섬기도록 허용해주신다는 것이 아니라
섬길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는 나무 돌 조각에 불과한 것을 섬기는 자로 전락하게 될 저주의 말씀이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다.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가 죄인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푸신다.

정리해보면, 우상을 만드는 경우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경우에 큰 차이가 있다.
우상은 “목석”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죽은 나무요 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결국 인간에 의해 도구가 된다.
우상을 만들어 신으로 섬기는 것조차 인간이 스스로 부패하여 목석을 신으로 도구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위안을 삼겠다는 것이다.
그때 우상은 전적으로 섬김의 대상이 되는 신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우상은 아무 상관이 없다.
사람이 우상을 전적으로 신으로 섬기든지
부분적으로 자기 위안의 도구로 삼든지 우상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찾을 때에만 만날 수 있는 분이다.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요, 신으로서 인간이 그를 찾을 때에야 만나주신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그를 찾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부분적으로, 자기만족을 위해, 도구로서 그를 찾는다면
하나님은 만나주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취급을 받아도 아무 상관이 없는 목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상은 누구든지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하나님은 전적으로 마음과 뜻을 다하여 찾을 때에만 만날 수 있다.
우상은 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물건이기 때문에 사람이 아무때나 가지고 놀 수 있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개념이나 도구가 아니다.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찾아야만 하는 분이다.
이것이 세상의 일부분에 불과한 우상과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차이다.
사람이 세상의 재료로 만든 물건들이란 세상의 일부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것은 나의 주인일 수 없다.
그것은 나의 “마음”과 “뜻”을 “다하여” 섬길 주인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 그렇다.
하나님만 나의 주인이시다.
온 세상의 창조주시다.
하나님만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시다.
하나님께만 나의 전적인 헌신이 돌아갈 분이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나뉘어서야 되겠는가!
자기 위안을 위해 세상을 기웃거려서야 되겠는가!
마음과 뜻을 다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데도 그러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