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1-14,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요단 동편의 땅이 평정되었다.
먼 친족인 에돔과 모압과 암몬의 땅은 그대로 두고, 아모리와 바산의 땅은 점령되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면 가나안이다.
이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에 들어갈 다음 세대에게
광야에서 가르쳤던 말씀을 ‘다시’ 반복하여 가르친다.

그 가르침의 내용은 분명하다.
‘하나님 말씀을 잘 배우고 지켜 행하라.
그리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잘 가르쳐 그들도 지키게 하라.’
정리하면 말씀의 학습과 준행과 전수, 이 세 가지다.
배우는 것이 있어야, 즉 잘 배워야 행동할 수 있다.
배우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거나 배우지 않고 행동하기만 하는 것은 둘 다 문제다.
그러나 또한 나만 잘 배우고 잘 지켜 행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이 다음 세대에게 전수되어야 한다.
믿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또한 전적으로 공동체의 사안이다.
믿음이 공동체적으로 되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공동체란 하나님께서 부르신,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이지만
그 믿음이 원심적인 영향력을 가질 때에 진정한 공동체다.
내적인 결속력만으로 공동체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 밖의 사람이 그 공동체를 인정해 줄 때에야 이들은 결속력을 가진 것이 된다.
말씀의 학습과 준행과 전수를 잘 하는 공동체는
공동체 밖의 사람들에 의해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으로 인정받는다.

말씀의 사람만이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다.
지혜와 지식은 말씀을 잘 배우고 실천하며 잘 가르치는 자에게만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심지어 세상에서도 알아본다.
세상이 내가 지혜롭고 지식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내가 말씀을 잘 안 배우고, 그대로 잘 살지 않고, 그것을 잘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아, 나는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인가?
학습과 준행과 전수, 내게서 무엇이 가장 부족한가?
아, 내게 충분한 것이 없구나.
부지런히 배우지 않고, 아는 것이 있어도 그에 따라 살지 않고, 잘 가르치지 않는 것 중에
내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어느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면서
나머지는 그래도 좀 괜찮을 것이라는 판단이 나오게 하는 꼼수를 쓸 수 없다.
왜냐하면 모두 다 부족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는 제대로 준행하지 않는 것,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만,
사실은 그 근본 이유가 잘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명기 묵상’은 이 세 가지의 부족함을 깨닫고 크게 자성하며
간절히 이것을 위해 애쓰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