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3:1-11, 두 순종, 아모리에게 행한 것과 같이 바산에게도)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여정에서 한 쌍을 이루는 대상이다.
두 나라는 요단 동편에 서로 인접해 있었다.
그리고 하는 행동도 똑같았고, 이스라엘에게 패망한 내용도 동일하다.
그들은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이스라엘)를 대적”하여 싸우다가 전멸당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바산 왕 옥과 그 모든 백성을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행하였음을 강조한다.
먼저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이스라엘이 그 말씀 대로 행했음을 확증한다.(“우리가 헤스본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 성읍들을 멸망시키되”)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처음에, 즉 아모리 왕 시혼에게 행한 것이 잘 한 것임을 전제한다.
그때 잘못하고,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과 같이 하면 안 된다.
그때 잘 했기 때문에 그것과 같이 하면 된다.
처음에 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러면 그다음에는 그와 같이 하면 된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기 때문에 그다음에 그와 똑같이 하면 되었다.
처음 순종은 다음 순종으로 이어진다.

두 순종의 결과는 같았다.
하나님께서 아모리 땅을 이스라엘에게 넘기셨듯이 바산의 땅도 넘겨주셨다.
이스라엘은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이르기 전에 이미 꽤 넓은 땅을 얻은 것이다.
하나님의 요단 동편의 땅 가운데 에돔, 모압, 암몬은 우회하게 하시고,
아모리와 바산은 점령하게 하셨다.
지나갈 땅이 있고, 차지할 땅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스스로 안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때마다의 지시에 따르고 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목적은 땅을 차지하는 데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느 땅이든 다 점령해야 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
그것이 그들을 애굽에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이었고,
바로 이 사명을 위해 이스라엘은 대장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함에는 악인의 진멸이 포함되어 있고,
친족에 대한 관대함도 내포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을 이스라엘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이스라엘은 순종한다.
이것이 성도의 인생이다.

나는 다음의 순종을 위해 처음에 순종을 하자.
그리하여 그다음에 처음 “행한 것과 같이” 하면 된다.
나의 순종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그다음에도 똑같이 이어지도록
두 번의 순종이 되어야 한다.
아, 무엇보다 첫 순종을 잘 해야 둘째 순종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