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26-37,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 넘기시는 땅)

40년 전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큰 범죄를 저질렀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정탐을 한 뒤에
그 땅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기겁하여 열등감에 빠져 하나님의 인도를 불신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 내팽개친 듯이 굴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랴”, 이것이 그들의 탄식이었다.
더 자세히 인용하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우리가 어디로 가랴”라고 부르짖었다.
그때 그들은 출애굽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아모리 족속에서 넘겨 멸하려는 음모였다고 원망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해코지하니 어디로 가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 탄식한 것이다.

이제 40년이 지나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훨씬 나아졌다.
그들은 불평과 원망과 회의와 이의 없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 여정은 40년 전의 가데스 바네아 행로보다 사실 더 불안한 길이었다.
왜냐하면 요단 동편의 여러 나라들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게 상식적이지 않았다.
에돔과 모압과 암몬을 지나면서 그들의 양해를 구하며
아무런 폐가 되지 않게 통과하겠으니 허락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거대한 수의 이민족이 자국의 영토를 가로지르는 것을 누가 허락하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거절하자 더 이상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우회하며 가나안을 나아갔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평화의 여정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은 순종했다.
그만큼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 확신이 있었다.
40년 전과는 참으로 달랐다.

마지막 관문은 “아모리”를 통과하는 일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도 평화의 제의를 했다.
아무런 폐를 끼치지 않고 통과하겠고, 필요한 것은 돈으로 살 것이라고 제의했다.
이번에는 아모리가 큰 실수를 했다.
왕 시혼이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우리를 대적”한 것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통과를 거절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공격까지 감행한 것이다.
그들은 전쟁을 발발했다.
그것은 참으로 큰 실수였다.
그들은 화를 자초했다.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모리를 이스라엘에게 “넘기”신 것으로 분명히 알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제 시혼과 그의 땅을 네게 넘기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우리에게 넘기시매”
“여호와께서 그 모든 땅을 우리에게 넘겨주심으로”.

지도를 보면 아모리 족속은 사해의 서편에도 있고,
요단 동편 갈릴리 쪽에도 위치한다.
아마 같은 민족이 둘로 나뉘어 땅을 차지한 것 같다.
묘하게도 40년 전에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이 두려워했던 ‘아모리 족속’과
40년 후에 전멸시키게 될 ‘아모리’가 바로 그들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모리 족속에게 넘기신다고 탄식했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아모리를 우리에게 넘기셨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이 있고, 넘기시는 땅이 있다.
“주시는 땅”은 애초에 주시기로 약속하신 가나안이다.
이스라엘은 그곳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도중에 만난 대적의 땅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신다.
그것은 ‘덤’이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아모리를 덤으로 주셨다.
순종하는 자에게 미리 주시는 선물이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의심스러워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죄를 짓지 않았다.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하라시는 대로 했다.
평화를 제의하고 거절하면 우회하고, 그저 하나님을 믿고 먼 길을 돌아가고 남의 나라를 통과했다.
전쟁이 나면 무서워 도망가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러지 않았다.
하나님이 넘기시는 대로 담대히 싸웠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이 있다.
그것을 내가 얼마나 온전하게 순종함으로 감당하고 있는가?
하나님이 그 과정에 내게 넘기시는 일이 있다.
나는 그것을 덤으로 알고, 그것을 선물로 감사하는가?
순종하는 자의 담대함이 참 내게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