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1-25, 다투지 말 자, 싸울 자)

오늘 본문은 시간적인 길이와 공간적인 범위가 굉장치 크다.
38년의 시간 동안 가데스 바네아에서 남향하여 홍해를 거쳐
다시 북향하여 사해의 북동쪽 헤스본에까지 이른다.
이 긴 과정이 25절의 말씀으로 축약되어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압축되었을 뿐 생략된 것은 아니다.
더욱이 기록할 가치가 없는 자투리 시간이 아니었다.
38년간, 그 넓은 땅을 오가며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순종의 죗값을 치르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순종의 훈련을 쌓고 있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훈련은 누구와는 다투지 말며,
누구와는 싸워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일임하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마음에 들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수가 틀리면 공격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대상에 따른 평화와 전쟁은 하나님께서 정하시며
이스라엘은 그에 순종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싸워야 할 대상과 평화를 유지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 정해주신다.
당시의 세계에서 이스라엘 외에는 하나님을 믿는 민족이 없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옛 언약을 기억하시고 어느 민족과는 다투지 말고,
어느 민족은 점령할 것을 명하신다.
그것은 단지 아무 이유 없이 무작위로 하나님이 하라시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의 조상과 친척 관계인 경우는 ─에돔, 모압, 암몬─ 그들과 평화를 지키도록 하셨다.
조금도 피해를 주거나 성가시게 하면 안 되며
공손하게 통과를 부탁하고 만일 거절하면 멀리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아모리와는 싸워 땅을 차지할 것을 명하신다.
그 이유는 아모리가 가나안의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께서 진멸하실 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된다.
싸울까 말까, 화평할까 말까는 이스라엘이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평화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싸워야 했다.
그것에서 벗어나면 불순종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판단이 공의로우심을 믿는 연습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무조건 신뢰하는 훈련이었다.

아, 가데스 바네아 사건이 곧 불순종이었고
이스라엘의 새 세대는 그 이후 38년간을 광야에서 순종을 배우고 있다.
그래야 가나안에 들어갈 것 아닌가!
아, 나의 순종의 기간은, 나의 순종의 공간은 얼마나 넓을까, 좁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