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34-46, 온전한 순종, 경솔한 열정)

가데스 바네아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을 두 부류로 확연히 나누었다.
순종한 자와 불순종한 자다.
그 수로 말하면 압도적으로 불순종의 무리가 많다.
그것은 열두 명의 정탐꾼 가운데 10 대 2의 비율로 나타나지만,
전체 백성들로 확산하여 보면 20세 이상과 이하로 갈라진다.
그러나 10명의 정탐꾼을 따라 하나님을 거역한 자는 성인들 전부였다.
그러니까 백성들 가운데 단지 10 대 2의 비율을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종한 자는 어려운 판단력을 통과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수수께끼 같은 난해한 문제를 풀어낸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순종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무엇이 하나님의 뜻일까를 고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이미 분명한 하나님 말씀이 있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므로 그리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그들의 순종이었다.
이 단순한 순종이 온전한 순종이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머리를 굴려 계산하고 자기 스스로 답을 끌어냈다.
그것이 그들의 문제점이었다.
이미 주신 말씀을 망각하고 간과하고,
마치 하나님의 인도가 전혀 없기라도 한 것처럼 어둠 속을 헤맨다.
바로 어제 말씀에서 10명의 정탐꾼을 무조건 따라
“우리가 어디로 가랴” 하고 탄식한 것과 똑같다.
하나님이 모든 길을 앞서 행하시며 인도하셨는데,
마치 아무 길도 가르쳐주시지 않는 듯이 “우리가 어디로 가랴” 하는 것이다.

묘하게도 하나님 말씀을 불순종한 자들이 그것을 상쇄하려는 듯이
이제는 금하신 말씀을 기어코 순종하겠다고 나선다.
그것은 경솔한 열정일 수는 있어도 결코 순종이 아니다.
사람들은 순종의 여부보다 열정의 여부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열정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합리화된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으로 해내려 하여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라면 그것은 경솔한 행동이다.
그것은 온전한 순종이 아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온전히 순종한 자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그대로 따랐다.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을 중시했다.
그러나 나머지 백성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머리로 접근을 했다.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따지고 그게 아니라고 우겼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있자
이제는 경솔한 열정으로 급변했다.
순종이 아니라 열정을 무기로 삼은 것이다.
처음에는 머리로 하나님을 대항하더니,
이제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거역한다.

불순종을 상쇄하거나 만회하는 것은 결코 경솔한 열정으로 될 수 없다.
그것은 더 심각한 불순종을 낳을 뿐이다.
불순종은 오직 순종으로만 갚아질 수 있다.
그 사이에 있어야 할 것은 회개뿐이다.
머뭇거리고 지체할 일이 없다.
그저 부복하여 회개하고 하나님의 긍휼로 다시 순종의 길로 가는 것이다.
아, 나는 자주 이러하오나,
다시금 온전한 순종으로 인도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