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8:1-10, 광야 징계 후 아름다운 땅으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
그것은 단지 악몽으로 기억 밖에 밀쳐져야 할까?
그렇다면 그것은 다분히 원망, 한, 억울함, 섭섭함으로까지 나아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니다.
출애굽 후 바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맨 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잘못 때문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업신여긴 배은망덕이요
심지어 하나님을 공격하기까지 한 죄악이었다.

그보다 더 큰 뜻이 있었다.
단지 처벌로서 광야의 벌을 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징계”였는데,
재판관이 범죄자에게 가한 형벌이 아니라 부모가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은
하나님의 사랑의 매였다.
무엇보다 징계를 통한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었고,
그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사람이 “살고 번성”하는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 지켜 행하”는 것이다.
그러면 죄를 범하여 죽게 되었고, 쇠락하게 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면 살아나고 번성할 수 있을까?
그것은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금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을 통해서다.
광야는 바로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기회였다.
결핍의 장소에서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훈련의 과정이다.

광야는 벌 받는 장소이지만 암흑 속의 감옥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은 아무 수고도 없이 만나를 통해 식량을 공급받았고
의복과 건강에 아무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화려한 낭비를 가능하게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광야의 의식주는 생존에 충분하지만 ‘단순한 삶’의 방식이었다.
광야의 삶은 오직 감사와 근신과 소망을 가능하게 하는 삶이다.
거기서 이스라엘이 할 일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다.
광야의 의식주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는 목적을 가졌다.
광야에도 떡이 있어 감사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준 것이므로 하나님께만 의존할 식량이요,
결국 사람이 “살고 번성”할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므로,
떡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된다.

광야의 징계는 결국 “살고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
즉 광야 징계 후에 이스라엘은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된다.
“모자람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요 하나님이 주신 “옥토”다.
이스라엘은 옥토로 들어갈 것인데 그것은 광야의 징계를 통해서만이다.
절망과 악몽이 아니라,
회개와 근신과 감사와 소망과 단순한 삶과 순종과 하나님 의지를 배우는 학습 현장인 광야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