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7:12-26,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모든 나라가 국제적으로 늘 가변적인 상황에 있다.
변화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가장 선호하는 외교정책은 ‘현상유지’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은 국제관계에 큰 변수가 될 것이다.
가나안 땅의 일곱 족속을 “진멸”할 것이며
그 땅을 차지하여 지도와 영토의 주인이 바뀔 것이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시도다.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깨뜨리는 모험이다.
가만히 있어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는 늘 긴장되는 국제상황인데
이스라엘은 변화를 자초하여 위험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꼴이다.

더구나 이스라엘은 원주민보다 수가 적고
국가로서의 체제나 군사력이나 경제력에서 구비된 것이 없다.
이스라엘은 400여년을 노예로 살다가 최근 40년 동안은 광야에서 방황했을 뿐이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축적해 놓은 것이 없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지금 할 일은 전쟁이다.
1 대 1이 아니라 7 대 1의 싸움을 거는 것이다.
이 무모한 상황에서 어찌 태평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이 두려워할 것은 당연하다.

그것을 하나님께서 잘 알고 계셨다.
가나안 행 자체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오랫동안 숙고하며 철저히 계획하여 준비한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그러기 위해 일곱 부족을 진멸하는 것,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다.

차라리 자기 생각이었다면 더 현실적이 되고 상황과 사정에 맞는 전략을 짰을 것이다.
즉 더 두렵지 않을 처지를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생각과 관계없이 어마어마한 일을 계획해 놓고 계셨다.
나의 현명하지 못한 머리에서 나오는 계획이란 두려움에 처할 것밖에 없다.
현상유지에도 일말의 두려움이 있는데
지금 이스라엘은 국제적인 분쟁을 자초하는 상황에 있으니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이 강조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 때문이다.
즉 두려움의 대상이 둘이 있다.
하나는 그들, 곧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며,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시다.
당연히 하나님 앞에서 일곱 나라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진정으로 “두려운”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할 분이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이 두려워할 분이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두려운 분이다.
그것은 변덕 많은 독재자의 전횡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권능 많으신 분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은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죄인들의 두려움이다.
두려움을 갖는 이유는 자신의 거룩하지 않음 때문이며 자신의 죄와 악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서 흔한 것은 사람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눈치는 보며 하나님의 뜻은 전혀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 앞에서는 절절매며 하나님 앞에서는 안하무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들”은 자신이 쌓은 죄악으로 하나님의 진멸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직접 수행하신다.
이스라엘이 겁 없이 나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로지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의 전략은 이것이다.
이것뿐이다.
그들(세상,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