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5:22-33, 경외: 듣고 행함)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비롯해 모든 율법을 반포하실 때
백성들은 불타는 산과 우레와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지당하게도 두려움을 느꼈다.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 그것을 “경외”라 한다.

경외란 무엇인가?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이 두려워 감히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었다.
그리하여 모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해주기를 간청한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중보의 역할을 맡는다.
이와 같이 경외란 중보인가?
그 중보가 만일 대리와 대신을 의미한다면 그것은 경외가 아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으로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 대리와 대신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 즉 대표에게 종교적인 역할을 일임하여
그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보통 사람은 아예 하나님께 나아갈 일을 만들어놓지 않는 것이다.
고해성사니,
주의 만찬을 사제가 기도하는 순간에 포도주가 예수의 피가 되므로
감히 그것을 아무나 마셔서는 안 되고 신부만이 대표로 마셔야 된다고 하는 관례들이 그것이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말씀도 아예 종교 지도자들에게 다 맡기고
나머지는 일체 몰라도 되는 것으로 분업화하는 현상들이 그것이다.

본문에서 백성들이 모세에게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중보를 부탁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두려워서이지 하나님을 관계하지 않을 구실을 만들려는 것이 전혀 아니다.
그들의 요청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하소서”이다.
그러면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 이것이 경외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든 말씀을 회피하고 듣지도 행하지도 않을 구실을 만들려고
모세를 세워 종교 전문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즉 성직자가 대표로 말씀을 “듣고 행하”시오 하고
분업적인 대신, 대리를 부탁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목적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본심이요 목적이다.

이스라엘의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께서 “다 옳다”고 인정해주셨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흡족해 하신 것인가?
그들의 “경외”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금 모세에게 “그들에게 가르쳐서 ··· 이것을 행하게 하라”고 하신다.
즉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요청한 말을 그대로 반복하신다.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외는 하나님이 두렵다는 빌미로 종교 전문가를 세워 그에게 일임하고
자신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경외는 종교적 근엄함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형식과 절차를 말하지 않는다.
경외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다.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것을 사모하는 것이다.
오로지 이것을 중시하는 것이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기를 원하나이다.
제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