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44-5:10, 이 언약은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 모세.
그는 거창한 은퇴식을 열어 부풀린 퇴직금을 빼내려 하지 않는다.
자기는 못 들어갈 가나안을 험담하거나 그 의미를 축소함으로 분풀이를 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하나님 말씀을 백성들에게 다시 들려줄 뿐이다.
그것은 이미 선포되었던 “증언과 규례와 법도”다.
그것은 특히 40년 전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언약” 곧 십계명이다.

그런데 이때 모세는
이 십계명이 “여호와께서 우리 조상들과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언약이라고 선언한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40년 전에 살아있던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가데스 바네아 사건으로 인해 지금 남아있는 이스라엘 백성은 60세가 최고령인 젊은 세대다.
이들도 그때 겨우 미성년이었다.
그런데 모세는 그 언약이 당시의 조상이 아니라
“오늘 여기 살아있는 우리”와 맺은 언약이라고 강조한다.

아,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속성이다.
하나님 말씀은 영원하며, 시간을 초월하여 효력을 발한다.
하나님 말씀은 언제나 현재의 말씀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3500년 전의 기록을 오늘 읽으며
나는 하나님께서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다.
나는 성경에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광야에서 지독하게 어리석도록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다.
사울왕의 불타는 질투와 다윗왕의 더러운 정욕은 바로 나의 모습이다.
바리새인의 위선과 외식은 아, 지금 나의 본질 아닌가!

나는 성경에서 죄인들의 어리석음을 연극처럼 구경할 수 없다.
내가 거기서 그 어리석은 죄를 짓는 현장범이다.
하나님의 말씀 어느 것 하나도 내게 하시지 않는 말씀이 없다.
‘이건 내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야’라고 귀 밖으로 흘려버릴 말씀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오늘 여기 살아있는” 자와 언약을 맺으신다.
지금, 여기에 누가 살아있는가?
광야 1세대인가?
아니면 2세대인가?
모세인가, 여호수아인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지금 여기 살고 있지 않다.
“오늘 여기 살아있는” 자는 나 아닌가!

아, 하나님이 오늘, 지금 하시는 말씀을 내가 잘 듣겠습니다!
그 말씀을 내가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