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11-24, 무엇을 살펴볼 것인가)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작업을 대적하는 자들은 집요했다.
그들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까지 들먹거리면서
예루살렘을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라고 비난했다.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역사를 들춰내는 것은
단지 성전 건축의 역사적 근거를 흐려놓기 위한 술책일 뿐이었다.
예루살렘이 그러한 악한 전력을 가진 것과
왕명에 의해 성전을 재건하게 된 것은 두 개의 다른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시간적인 차이가 난다.
유다 백성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었던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400년이 넘는 왕국의 역사 내내 이스라엘(과 유다)은 패역하고 악했다.
그 결국은 바벨론 포로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유다는 70년 만에 풀려나고
바사의 고레스가 성전의 건축까지 명령하고 후원했다.
그러므로 유다의 패역하고 악한 역사는 진실이기는 하지만
보다 최근의 고레스 왕의 해방 선언은 과거의 결정을 다 무효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의 근원이 어디인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이었던 것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귀환한 유다 백성이 성전의 재건을 공사하는 것은 최근의 왕의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즉 유다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 두 종류가 있는 셈이다.
먼 과거의 누적된 역사와 최근의 국가 정책.
그러나 여기서 현재의 사안이 성전 건축이므로
―만일 전쟁 등을 주제로 삼는다면 다르겠지만―
바로 그 일의 근거를 추적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지만 대적들은 바로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게
역사를 빙자하여 술책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에스라 시대의 유다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재건축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 사건은 죄인―즉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사건이다.
대적들의 고발은 마치 죄인들에 대한 마귀의 참소와 같다.
마귀는 우리의 과거를 아주 잘 안다.
그래서 그것으로 얼마든지 우리를 괴롭힐 수 있다.
그러나 마귀가 숨기는 우리의 과거가 있다.
마귀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만을 제시하는 것이다.
바로 예수께서 죄인들을 위해 하신 일,
그 은혜로 예수를 믿고 죄를 용서받은 일,
이제는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일을 마귀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는 아무리 예수가 죄인들을 구원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을 보면 전혀 변화되지 않았고 삶에서 구원받은 증거가 드러나지 않으니
여전히 죄인이며 형벌을 받아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마귀의 말은 맞다!
나는 일찍부터 죄인이었고, 예수를 믿었음에도 죄인의 행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구원을 위해 내가 입증한 사실은 전혀 없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구원의 증거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유다 백성의 성전 재건축의 근거가 그들의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레스 왕의 명령과 조서에 있는 것과 같다.
죄인을 심판하실 주께서 죄인들을 위해 죄값을 대신 치르셨다.
그리하여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졌다.
구원은 죄인의 변화된 행실의 입증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차츰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든 후속 과정에 앞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셨고 받아주셨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떤 과거를, 어떤 역사의 증거를 살펴볼 것인가가 정말 중요하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역사인가, 고레스 왕의 조서인가?
나의 과거인가, 예수님이 행하신 사건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