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 4:1-10,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과 유다로의 귀환과 성전의 재건은 참으로 놀라운 사건이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냥 형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있었다.

하나님의 뜻(+일)과 만사형통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한 오판이 꽤 흔하다.
하나님의 뜻이 아무 방해 없이 일사천리로 관철되는 것은 아니다.
마귀의 방해가 있고 빛을 싫어하는 세상의 대적이 있다.
또한 형통한 일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당화하는 일도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은 성도의 고난, 즉 세상에서 많은 반대에 직면할 것을 예고하셨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성전 건축에 동참하겠다고 제의함으로써 마치 신앙적 동역을 꾀하는 듯 보였다.
만일 그것을 거절하면 하나님도 거부하는 것인가?
그러한 오해를 야기할 빌미를 그들은 노렸던 것이다.
그러나 귀환 백성의 지도자들은 대적들의 궤계를 간파했고
그들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대적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는 지혜가 참으로 중요하다.
지도자들은 분명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했을 것이다.
그들의 진의가 무엇인지, 그 속에 감추어진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지도자들에게 보여주셨을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께 여쭈면서 지혜를 얻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과단성 있는 거절이 놀랍다.
대적들은 먼저 유다 땅에 살고 있던 자들이다.
그들은 이제 갓 돌아온 귀환 백성들보다 자신의 기득권을 주장한다.
특히 신앙을 빙자하여 그렇게 한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분명하다면
분명한 선을 긋고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한다.
아, 주저하고 미루고 그러다가 대충 타협하고 넘어가기가 얼마나 쉬운가!
대부분의 죄가 이러한 머뭇거림에 의해 시작된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라고 단호히 거절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결단성은 큰소리치는 배포와 배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담대한 순종을 말한다.
기득권을 주장하는 대적들 앞에서 얼마나 두렵겠는가!
그럼에도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이 중요하다.
본문의 지도자들은 그러한 모범을 보였다.

성전은 완공되기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그 긴 기간 동안 이들은 인내하고 담대하게 맞섰다.
이것이 부활 후 재림의 사이를 사는 성도의 삶이다.